차이콥스키×미녀와 야수… 교향곡이 춤춘다

  • 정준호 KBS FM 실황음악 진행자

    입력 : 2017.10.25 03:18

    상하이 예술제 찾은 로잔 베자르·말랑댕 발레단

    지난 20일 시작한 중국 상하이 예술제는 초반 유럽 발레단이 눈길을 끌었다. 우선 비아리츠 말랑댕 발레단. 프랑스 대서양 연안의 휴양 도시 비아리츠는 별로 내세울 자랑이 없는 곳이다. 기껏해야 나폴레옹 3세의 황후 외제니의 고향이자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가 수년을 머문 곳 정도랄까. 무명 소도시를 주목하게 만든 이가 안무가 티에리 말랑댕이다. 적은 인원과 간결한 무대 장식으로도 늘 강렬한 인상을 주기로 이름났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으로 안무한 '미녀와 야수'라니!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의 2막 간주곡과 왈츠로 시작한 춤은 교향곡 5번과 6번 '비창'의 주요 악장을 관통했다. 할리우드 만화와 같은 줄거리를 따라가려면 실망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계체조처럼 절도 있는 솔로, 가사 없는 이중창인 듀오, 역동적 짜임새로 된 일동의 춤이 무아지경을 불러왔다. 차이콥스키가 '백조의 호수' 초연 때 들었던 비판, 곧 '춤추기에 너무 교향곡 같다'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말랑댕은 교향곡을 춤춰 보였다.

    이미지 크게보기
    티에리 말랑댕이 상하이예술제에서 올린 발레‘미녀와 야수’. 차이콥스키 교향곡에 맞춰 환상적인 춤으로 안무했다. /비아리츠 말랑댕 발레단
    다음 날은 그보다 널리 알려진 스위스 로잔 베자르 발레단이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 피리'를 무대에 올렸다. 발레단 창단 30주년과 베자르 타계 10주기를 기려 고인이 1981년에 만든 안무를 재공연한 것이다. 대표작인 '볼레로' '봄의 제전' '합창 교향곡'에서 보듯이 베자르는 '춤은 곧 제의(祭儀)'라는 점을 강조한다. '마술 피리'는 선남선녀의 통과의례를 형상화한 '노래 연극'(Singspiel)이라는 점에서 베자르의 뜻과 들어맞는다.

    모차르트가 관여하지 않았으되 음악으론 이미 완벽하게 주문해 놓은 율동이 베자르를 통해 완성됐다. 말로 다하지 못할 전개는 변사를 겸한 메신저가 맡아 제사를 주관했다.

    카를 뵘이 지휘한 전설적 녹음이 눈앞에 펼쳐졌다. 파파게노 역의 일본인 무용수 마사요시 오누키는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익살로 날개를 달았고, 파미나 역의 카테리나 샬키나는 오래전 이 발레단의 주역이던 수전 패럴 못잖게 시선을 사로잡았다. 로버타 페터스가 부르고 엘리사베트 로스가 춘 밤의 여왕은 백설공주의 계모 바로 그 모습, 또 쥘리앙 파브루의 자라스트로는 발레단의 스타였으나 에이즈로 요절한 조르주 동의 힘찬 몸짓을 떠오르게 했다.

    간결한 단색 의상과 조명, 그리고 기하학적 동선은 모차르트가 뜻했던 프리메이슨의 모험을 상징했다. 동화와 제의를 결합하려는 베자르 미학은 인간과 신의 일체를 상징하는 피날레로 완성되었다. 스트라빈스키가 간파했듯 춤과 음악은 별개가 아니다. 단, 둘이 만날 때 어느 한쪽에 누가 되어선 안 된다. 음악과 춤이 서로 상찬한 두 무대가 상하이 밤길을 아름답게 했다.

    상하이예술제는 11월 19일까지 한 달간 계속된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