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부에선 '엘리트 관료 패싱'

    입력 : 2017.10.20 03:15

    ["盧정부때 관료 불신이 트라우마… 정책 추진력 약화 우려"]

    '늘공(늘상 공무원)'보다 '어공(어쩌다 공무원)' 대거 중용
    국무위원 18명 중 관료출신은 1명뿐, 4强 대사도 외부인사
    기재부·외교부·법무부 특히 심해… 관료들 "우린 하수인"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간부들 사이에선 "우리가 시다바리(하수인)냐"는 불만이 자주 터져나온다. 지난 8·2 부동산 대책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발표하고, 일자리 로드맵을 일자리위원회가 주도하는 등 기재부가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김동연 부총리의 반대에도 당청의 주도로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이 결정되자, 관가에서는 '김동연 패싱(건너뛰기)'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청와대 경제수석이나 관세청장처럼 기재부 몫으로 여겨졌던 자리도 외부 출신에게 돌아갔다.

    기재부 관료들의 무력감에 대해 캠프 출신의 현 정부 고위 관계자는 "김동연 패싱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기재부 관료를 믿지 못하는 '기재부 패싱'"이라며 "노무현 정부 때 관료들에게 포획돼 각종 개혁 정책이 좌초됐던 트라우마(정신적 충격)가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존 관료 조직에 대한 불신(不信)은 엘리트 관료들이 많이 포진한 기재부와 외교부, 법무부(검찰)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외무고시 출신이 아닌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나 교수 출신인 박상기 법무장관 임명이 대표적이다.

    미·일·중·러 4강(强) 대사 중에는 직업 외교관 출신이 한 명도 없다. 1990년 한·소 수교와 1992년 한·중 수교로 4강 대사를 파견하게 된 이래,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외교부 장관과 4강 대사에 모두 비(非)외교관 출신을 임명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16일 한 강연에서 4강 대사 인사에 대해 "외교관은 아무나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사"라고 비판했다. 법무부의 7개 실·국장 가운데 교정직 공무원 몫인 교정본부장을 제외한 6개 자리 중 절반이 비검사로 채워졌다. 전에는 모두 검사들이 맡던 자리들이다.

    문재인 정부 인사(人事)의 특징은 직업 관료인 '늘공(늘상 공무원)'보다는 외부 출신인 '어공(어쩌다 공무원)'을 중용한다는 것이다.

    현재 공석인 중소벤처부 장관을 제외한 현 정부 국무위원 18명 가운데 캠프 출신이 아닌 순수 관료 출신은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유일하다.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적다. 노무현 정부 첫 내각에서는 고건 총리와 김진표 경제부총리, 조영길 국방부 장관,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 최종찬 건설교통부 장관,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 등 6명이 늘공 출신이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첫 내각에서도 6~7명이 직업 공무원이었다.

    김대중 정부 때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낸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정권 교체 후엔 전 정권에서 일했던 공무원보다 새 정부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외부 출신을 중용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문제는 전문성과 조직 장악력도 없는데 캠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등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능력 없는 캠프 출신이 조직의 수장이 되면 물(공무원)에 떠있는 기름처럼 따로 놀 수밖에 없고, 결국 업무 파악한다고 허송세월하다가 공무원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역대 정부 가운데 공무원을 적(敵)으로 돌려세우고 성공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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