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탄수화물' 쌀밥 끊었는데, 왜 살은 안 빠질까?

끼니를 챙기기도 힘든 보릿고개 시절, 사람들은 보리쌀과 밀쌀을 섞어 쌀을 최대한 아껴 먹었다.
쌀밥을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평생소원일 정도였다.
귀하디귀했던 쌀밥이 지금은 홀대를 받고 있다.

  • 구성 및 제작= 뉴스큐레이션팀 이시연

    입력 : 2017.11.08 08:52 | 수정 : 2017.11.08 09:01

    /조선DB

    가을이 제철인 참게를 간장에 숙성시킨 뒤 게딱지에 쌀밥을 비벼 먹는 맛이란 상상만으로 군침이 돈다. 간장게장 같은 별미가 없어도, 갓 지은 쌀밥 한 숟가락을 김에 싸서 김치 한쪽을 죽 찢어 올려 먹는다면 그 맛은 맛집에서 먹는 한 끼 식사 못지않다. 이렇듯 우리나라 국민의 주식(主食)으로서 맛의 한 축을 담당했던 쌀밥이 점점 식탁에 오르지 않고 있다.

    지난 2014년도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일주일 동안 가장 자주 섭취하는 음식은 커피(11.9회)로 줄곧 1위 자리에 있었던 쌀밥(6.5회)을 처음으로 제쳤다. 1위 자리에서 밀려난 쌀밥은 배추김치와 잡곡밥보다도 순위가 뒤처졌고, 더 이상 섭취량이 늘지 않고 있다. 관련 기사▶


    쌀밥, 왜 멀리하게 됐을까?

    연간 쌀 소비량은 꾸준히 줄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1.9㎏으로 30년 전인 1986년(127.7㎏)과 비교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밥 한 공기에 쌀 100~120g이 들어가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한 사람이 하루에 먹는 쌀밥은 한 공기 반 정도다.

    쌀밥 섭취량이 줄어드는 주원인은 식습관의 변화다. 과거에는 쌀밥과 반찬으로 된 상차림이 주식이었으나 요즘에는 빵·면 등 밀가루 음식과 조리과정이 간소화된 인스턴트 음식을 즐겨 먹는다.

    '다이어트'와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탄수화물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도 쌀밥을 덜 먹게 되는 또 다른 원인이다. 탄수화물 속 포도당이 지방으로 전환돼 체내 축적되는 영양소라는 점 때문에 살을 빼려는 사람들은 탄수화물 섭취를 줄인다. 쌀밥도 탄수화물 함량이 높다면서 '다이어트의 적'으로 취급한다. 쌀밥 대신 육류나 유제품 위주의 식단을 먹고, 밥을 먹더라도 단백질 함량이 높은 잡곡밥으로 먹는다. 건강을 고려하는 사람들 역시 다양한 곡물이 섞여 쌀밥보다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잡곡밥을 선호한다.


    쌀밥, 영양가 낮은 '탄수화물 덩어리'라고?

    쌀밥은 탄수화물 함량이 높아 몸속에 많은 당분이 흡수된다는 이유로 체내 당분 축적을 피하려는 다이어터들뿐만 아니라 당뇨 등 혈당 조절에 민감한 성인병 환자들에게도 기피 음식 중 하나다.

    그러나 쌀밥은 영양가가 낮은 '탄수화물 덩어리'라는 오해 때문에 사람들의 거부감이 더 커진 측면이 있다. 벼를 도정하는 과정에서 쌀눈(배아)과 쌀겨가 깎여나가 쌀밥의 재료인 백미에는 전체 영양분의 5%만이 남아 있다. 백미는 쌀눈과 쌀겨가 그대로 남은 현미보다 단백질·비타민·무기질·섬유질 등 영양소 함량이 떨어지면서 탄수화물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이에 따라 쌀밥의 영양학적 가치가 평가절하된 것이다.

    흰 쌀밥에 필수 영양소 95% 제거돼
    당뇨병, 독(毒) 되는 음식과 약(藥) 되는 음식
     

    쌀밥, 건강 지키는 '착한 탄수화물'이에요


    쌀을 올바르게 섭취하면, 밥이 말 그대로 보약이 될 수 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쌀밥은 비만·당뇨 등 성인병을 유발하는 탄수화물의 덩어리라는 오해와 달리 양질의 영양소를 갖춘 '착한 탄수화물'이다. 탄수화물 식품은 크게 복합당과 단순당 식품으로 나눌 수 있다. 설탕·음료·빵 등이 단순당 식품이면 쌀밥은 현미·통밀·잡곡 등과 함께 복합당 식품에 속한다. 단순당 식품은 당질이 혈액으로 곧바로 흡수돼 혈당을 급격히 올리는 데다 소화가 빨라 허기를 쉽게 느낀다. 필수 영양성분이 적어 영양학적 가치도 낮다.

    성인병 위험성 크지 않아

    /조선DB

    반면, 복합당 식품은 전분과 섬유질을 동시에 함유하고 있다. 전분이 포도당으로 분해되면서 혈당을 높이더라도 그 속도가 빠르지 않다. 포만감을 유지하고 다른 음식물의 소화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하는 섬유질 덕분이다. 백미 역시 전분 75~80%, 단백질 6~8%, 지방·섬유질·회분·인 등 1~3%로 구성돼 있어 대표적인 복합당 식품이다. 따라서 쌀밥을 적정량만 먹는다면, 체지방 합성을 촉진하는 인슐린 분비를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아 혈당 조절에 도움이 된다. 당뇨병의 위험은 쌀밥보다는 단순당 식품을 먹을 때 커진다.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다이어트 식단은 체중을 감량할 때도 효과적이다. 쌀밥과 함께 생선·두부·채소 등 간이 세지 않는 반찬으로 균형적인 식사를 하면 포만감이 오래가 폭식이나 과식을 막는다. 다이어트 할 때 최대 고민인 변비도 예방할 수 있다.

    "포만감 크고 영양 듬뿍… 착한 탄수화물 식품 '쌀'"


    아이들 발육에 기여하고 피부 미용에 좋아
    쌀밥 속 단백질은 함량이 적더라도 성분이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다. 필수 아미노산인 리진(Lysine)은 연골·인대 등 조직 형성과 호르몬·항체 등의 생성에 필요한데, 바로 이 리진이 옥수수·조·밀가루보다 쌀에 더 많이 들어있다. 쌀밥 속 단백질은 특히 성장기 아이들의 발육에 기여한다.

    또, 쌀밥에는 비타민B군에 속하는 리보플라빈(Riboflavin)과 비타민E군에 속하는 토코트리에놀(Tocotrienol), 안토시아닌(Anthocyanin), 폴리페놀(Polyphenol) 등 피부 미용에 효과적인 성분이 들어있다. 이와 같은 성분이 혈액 순환을 촉진하거나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등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피부 세포를 재생하고 노화를 방지한다.

    쌀밥 건강식으로 재조명
    피부에도 '쌀밥이 보약'
    쌀이 다이어트에 좋은 이유 4가지

    신장 약하면 백미 먹어야

    몸속 노폐물을 소변으로 배출하지 못하는 신부전, 소변 눌 때 과도한 단백질이 섞여 나오는 단백뇨 등을 앓는 만성콩팥병 환자들은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한다. 이들에게는 피로감·부종·고혈압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심하면 부정맥이나 심장마비까지 유발될 수 있어 식이 조절이 중요하다.

    만성콩팥병 환자들은 쌀밥을 먹는 것이 좋다. 도정이 덜 된 곡물로 만든 밥에는 칼륨과 인, 단백질 함량이 쌀밥보다 높은데, 만성콩팥병 환자들은 이와 같은 영양소를 소변으로 원활히 배출하지 못하고 체내에 쌓아둬 건강상 문제를 일으킨다. 신장 기능에 장애가 있다면 전문가와 상의해 자신의 증세에 맞는 식단을 구성하도록 한다.
    ▲백미 밥 사진 /헬스조선 신지호 기자

    "만성 콩팥병 관리의 첫 번째는 식이요법"
     

    쌀밥, 맛있게 지으려면?

    경기도 이천에서는 매년 가을 '이천쌀문화축제'를 열고 '쌀밥 명인'을 선정한다. 이천 쌀밥 명인들이 백미 고유의 맛을 살리는 밥 짓기 노하우를 알려준 바 있다. 잘 지은 쌀밥은 밥알에 윤기가 나고 씹었을 때 차지고 달다.

    완전미·단일미를 골라라
    맛있는 밥은 품질 좋은 쌀을 고르는 것에서 시작한다. 대체로 품질이 좋은 쌀은 쌀알이 탱글탱글하고 반질반질 광택이 나면서 금이 가거나 깨지지 않아 온전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온전한 모양의 쌀알, 즉 완전미 비율이 높을수록 쌀 등급이 높다. 아울러 농촌진흥청과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매년 선정하는 단일품종의 쌀이 혼합미보다 밥맛이 좋다. 완전미와 단일미를 고르려면 쌀 포장지를 꼼꼼히 읽어봐야 한다. 쌀 포장지에 등급과 품종 등이 적혀 있다. 관련 기사▶


    아기 다루듯 살살 씻어라
    쌀은 씻을 때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쌀을 박박 씻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쌀알을 서로 비비면 금이 가거나 깨져 밥맛을 오히려 떨어뜨린다. 찬물에 빨리 씻어 버리고 다시 새 물로 씻기를 반복하도록 한다. 씻은 쌀은 물에 30분~1시간 불린다. 이후 밥을 안칠 때는 기존의 물은 버리고 새 물을 쓴다. 관련 기사▶

    밥물의 양은 1:1~1:1.3 비율로, 센 불에 끓여라
    압력밥솥으로 안칠 경우 쌀과 물의 비율을 1:1로 맞추고 센 불로 끓인다. 압력밥솥의 추가 흔들리면 약불에서 약 30초~1분간 둔다. 이후 불을 끄고 약 7~10분간 더 둔다. 불을 끄고 충분히 뜸을 들이지 않으면 쌀이 설익어 밥알이 거칠다.

    냄비밥은 압력밥솥 밥보다 분산되는 열이 많아 물이 더 필요하다. 쌀과 물의 비율을 1:1.3으로 잡는다. 처음에는 센 불로 끓이다가 밥물이 넘치려고 할 때 약불로 줄인다. 약불 상태에서 밥물이 잦아들면 다시 중불로 올리고, 남은 밥물이 쌀에 다 스며들 때까지 기다린 후 약불로 또 줄여 5분 정도 더 가열한다. 냄비밥을 할 때는 뚜껑이 투명하면 밥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 편리하다. 관련 기사▶


    쌀밥, 이렇게도 지어보세요

    녹차 밥
    녹차 밥은 밥을 지을 때 생수 대신 녹차를 우려내거나 녹차 분말(3g)을 푼 물을 넣는 것을 말한다. 녹차 향이 솔솔 나지만 식감에는 차이가 없다. 녹차 덕에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Flavonoid) 등의 항산화 성분이 증가한다. 관련 기사▶

    ▼ 코코넛오일 밥
    코코넛오일 밥은 물에 코코넛오일 한 숟가락을 넣어 안친 뒤 냉장고에 12시간 넣어 차갑게 보관하는 것이 핵심이다. 나중에 필요한 양만큼 데워 먹는다. 이렇게 먹으면 쌀밥의 열량을 50~60% 줄일 수 있다. 쌀밥의 열량은 녹말이 얼마나 소화되느냐에 달렸다. 코코넛오일이 녹말 성분 중에 포도당으로 분해되지 않는 이른바 '저항 전분'의 비율을 높인다. 즉, 저항 전분의 비율이 높아진 만큼 소화가 안 돼 같은 양이라도 열량이 줄어드는 것이다. 코코넛오일 밥은 볶음밥을 먹는 것처럼 고소한 맛이 난다. 단, 코코넛오일을 너무 많이 넣으면 느끼해지므로 주의한다. 관련 기사▶



    "밥이 주인이어서 '밥상'으로 불리던 것이
    '먹을 것'이 주인이어서 '식탁'으로 불리는 것에 자리를 내줬다."


    '우리 음식의 언어' 中 (한성우 지음·어크로스 출판)

    /조선DB(제공 CJ제일제당)

    요즘 한국인은 쌀밥을 일주일에 평균 여섯 번 먹는다. 흰 밥알을 수북이 쌓아 올린 고봉(高峰)밥을 식탁에서 보기가 어려워졌다. 매년 농가의 쌀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보다 쌀 소비량이 더 크게 줄어들고 있다. 남아도는 쌀은 정부의 골칫거리가 됐다. 정부는 쌀값의 급격한 하락에 농가가 무너지지 않도록 쌀 매입량을 늘리고 직불금으로 쌀값 하락분을 메워 주는 데만 연 3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한다. 쌀 재고를 감당하지 못할 때는 비축 중인 쌀 수십만t을 가축 사료용으로 처분하기도 한다.

    즉석밥 잘 팔려도… 남아도는 쌀
    정부, 쌀 가격 안정 위해 올해 37만t 시장 격리
    825만명 1년 먹을 쌀, 가축 사료용으로 처분


    쌀밥을 과거만큼 먹지 않는 것은 식습관의 변화에 따른 결과로, 개인에게 쌀밥을 많이 먹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쌀밥이 영양가가 낮아 건강에 득이 없다는 왜곡된 인식으로 쌀밥에 대한 편견이 생긴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때다. 현대인의 고질병인 비만·당뇨 등 성인병은 쌀밥을 먹어 야기되는 질환이 아니다. 불규칙한 식사와 신체 활동량 부족 등이 성인병 원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실제로 아시아 국가에서 100세 노인들의 장수 비결을 보면, 쌀밥을 위주로 삼시 세끼 정량을 먹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쌀밥이 영양학적으로 가치가 낮지 않다는 증거다.

    □ 그래픽 이은경

    □ 참고
    헬스조선
    식품의약품안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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