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성 축제의 끝… 10년째 끝나지 않는 '유바리의 비극'

    입력 : 2017.10.14 03:11

    [오늘의 세상]

    일본 첫 파산 지자체 가보니… 공무원 263명→97명, 초·중·고교 17개→3개, 시청 공무원은 한겨울에 스키복 입고 야근

    "탄광 대신 관광" 막연한 투자… 초반에만 반짝, 352억엔 빚더미… 홈피엔 빚시계 "224억엔 남았다"

    사람 사는 집보다 빈집이 더 많았다. 밤이면 불 켜진 집이 없어 사방이 캄캄했다. 11일 오후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유바리(夕張)시. 2007년 일본 지방자치단체 사상 처음 파산한 곳이다.

    시가지 곳곳에 '007 닥터노' '황야의 7인' 같은 수십 년 전 할리우드 영화 입간판들이 보였다. 파산 직전 16년 동안 유바리를 관광 중심지로 만들겠다며 유바리시가 해마다 개최하던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의 흔적이다. 유바리시 공무원에게 "이젠 영화제도 안 하는데, 왜 여태 철거하지 않느냐"고 묻자 "부끄럽지만 철거하는 데도 돈이 들어 못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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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동산도 영화간판도 철거비 아까워 방치 -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유바리시에 있는 폐장한 놀이동산 내 워터슬라이드가 방치돼 있다(왼쪽 사진). 1960년대 탄광으로 유명했던 유바리는 관광업으로 전향해 경제를 활성화하려고 했으나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2007년 파산했다. 오른쪽 사진은 한때 영화제로 유명했던 시내 곳곳에 옛날 영화 입간판들이 비용 부담 때문에 철거되지 않고 남아있는 모습. /게티이미지 코리아·김수혜 특파원
    재정 파탄 10주년을 맞는 유바리시가 일본에서 다시 화제다. 유바리시는 장기 불황과 고령화라는 현실에 눈감고 무리한 관광 투자를 계속하다가 수백억엔의 빚을 지고 파산을 선언했다.

    일반 기업은 파산하면 그때까지 벌어놓은 돈이 사라지는 대신 빚도 함께 날아간다. 지방자치단체는 다르다. 파산 후 유바리시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재정재생 단체'가 됐다. 국가가 빚을 떠안는 대신 유바리시는 자치권을 반납하고, 국가의 엄격한 관리 감독하에 최소한의 공공 서비스만 주민들에게 제공하며 마지막 1엔까지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이런 현실을 한눈에 보여주는 게 유바리시 홈페이지의 '빚시계'다.

    '2017년 10월 13일 현재 빚을 다 갚는 2027년 3월까지 3456일 남았습니다. 이제까지 갚은 빚 128억엔, 남은 빚 224억엔, 1시간에 25만2462엔꼴로 갚고 있습니다.'

    일본 유바리시의 눈물
    유바리는 1960년대까지 인구가 12만명에 육박하는 탄광 도시였다. 석탄산업이 몰락하자 유바리시는 '탄광에서 관광으로'라는 구호 아래 대형 놀이공원을 지었다. 처음엔 반짝했다. 일본인에게 유바리는 최고급 멜론 산지이자 1977년 큰 인기를 끈 국민영화 '행복의 노란손수건'의 무대다. 멜론도 맛보고 영화 무대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홋카이도 여행길에 유바리를 들렀다. 오래가지 않은 게 문제였다. 시바키 세이지(芝木誠二) 유바리시 재정과장은 "사람을 끌어들이려면 볼거리·놀거리를 계속 만들어야 하는데 작은 도시가 세금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걸 극복하려고 유바리시는 무리한 투자를 했다. 미국 콜로라도주(州) 애스펀시 같은 관광 명소가 되겠다며 탄광 자리에 스키장과 리조트를 짓는 '마운틴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10억엔을 들여 영화관도 세웠다. 이번에도 처음엔 반짝했다. 도쿄에서 비행기·버스·기차 갈아타고 한나절 넘게 걸리는 산골인데 영화제 방문객이 한 해 3만명에 육박한 적도 있다. 하지만 더 커지진 않았다. '연간 3만명' 위상을 유지한 것도 결국 세금이었다. 유바리는 8년간 분식 회계를 하며 망가지는 재정상황을 숨기려다 끝내 파산했다.

    파산은 공무원 사회를 가장 먼저 바꿔놨다. 파산 직전 300명 가깝던 공무원이 97명으로 줄었다. 이 중 22명은 유바리를 돕기 위해 도쿄도 등 다른 지자체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이다. 시장 월급은 86만엔에서 26만엔으로 줄었고, 일반 직원 급료도 40% 깎였다. 유바리시청은 한겨울에도 오후 5시 난방을 끈다. 영하의 사무실에서 스키복 입고 장갑 끼고 잔업하는 공무원 모습이 일본 TV에 보도된 적도 있다.

    파산은 주민들의 삶에도 후유증을 남겼다. 자동차세가 연 7200엔에서 1만800엔으로 오르고, 전에 없던 쓰레기 수거·처리비가 L당 2엔씩 붙었다.

    가장 심각한 건 아이들의 미래다. 파산 직전 17개였던 학교가 초·중·고 각각 한 곳씩만 남기고 3개로 통폐합됐다. 한 학년에 200명 넘던 유바리고등학교가 지금은 전교생 74명이다. 학교가 차례로 문을 닫자 아이를 둔 젊은 층이 유바리를 떠났다. 유바리 인구는 이제 8000명이 좀 넘는다. 지자체가 망해 학교가 사라지고, 학교가 없어 인구가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다. 경기 침체 속에 가게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으면서 주민들은 간단한 생필품도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서 배달을 받는 형편이다.

    유바리에서 나고 자란 와다 마사미쓰(和田政光·60)씨는 "영화제 한다고 외국에서 유명한 감독도 오고 배우도 오니까 잘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알고 보니 다 빚이었다. "이런 시골에 그런 사람들 데려오려고 교통비, 숙박비 다 대주며 불렀더라고요. 보세요. 저기는 정육점, 저기는 야채 가게, 저기는 생선 가게였어요. 다 문 닫았어요."

    유바리시의 파산은 다른 일본 지자체에도 큰 충격을 던졌다. 무리하게 골프장 짓고 파리 날리던 지자체 중에는 부랴부랴 '단돈 6000엔'에 골프장을 매각한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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