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세계를 움직이는 손, 아니 유령

    입력 : 2017.10.14 03:04 | 수정 : 2017.10.14 08:29

    알고리즘은 '인터넷의 질서'
    선택과 배제 과정에 편향성 개입 배제되면 사이버 迷兒 되는데도 질서의 주체는 행위 뒤에 숨어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베트남전을 살펴보던 미 CIA는 라오스가 북베트남에 전쟁 물자 지원하는 것이 영 거슬렸다. 보급로를 차단하려 몽(Hmong)족 용병 수천 명을 고용해 '비밀 전쟁'을 벌였다. 영민하고, 활 잘 쏘는 이 고산족은 정찰병과 스나이퍼로 제격이었다. 하지만 결국 미군은 떠났고, 몽족 삶의 조건은 혹독해졌다. 라오스 정부는 몽족을 대량 학살했고, 미군 편에 섰던 베트남 몽족도 박해를 받았다. 희생자가 수만 명 이상이라는 추산이 있지만, 어느 나라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쪽으로 6시간 거리인 사파(Sapa)에 간 것은 몽족의 삶이 궁금해서였다. 그들에게 그 일은 '과거사'가 아니라 그저 과거였다. '과거 청산'이란 '현재'에 이뤄지는데, 그들에게 현재란 '내일 먹을 밥'을 마련하는 날일 뿐이었다.

    거기서 만난 21세 몽족 여성 '추(Chu)'는 150㎝가 안 되는 키에 몸이 다부졌다. 영어 회화 실력은 서울에서 명문대 나온 이들보다 나았다. 다른 몽족 아이들처럼 추도 다섯 살부터 전통 의상을 입고 오지(奧地)를 찾은 유럽 관광객에게 물건을 팔았다. 학교에는 가본 적이 없다. 18세에 결혼해 아이를 낳고, 무직인 남편 대신 영어 관광안내원이 됐다. 길에서 배운 영어로 다시 길로 나선 것이다.

    기자가 호텔에 지불한 가이드 비용은 25달러였지만 그가 받는 일당은 12달러였다. 최고로 번 게 한 달에 300달러다. "어떤 몽족들은 에어비앤비에서 민박으로 돈을 벌더라" "해외 사이트에 가이드로 등록하거나, 민박집을 올리면 수입이 더 크게 늘어날 것"이라 했더니 그가 답했다. "몇몇 외국인들이 그렇게 얘기는 했었는데, 영어로 글자 쓰는 게 서툴러서…." 그와 함께 에어비앤비에 숙소 등록을 시작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등록 작업은 오래 걸렸다. '전열기구를 갖췄나' '노트북 작업을 위한 데스크가 준비되어 있는가' 같은 질문은 추의 민박집 사정에 맞췄다. 문제는 주소 등록. 추의 집 주소는 '라오차이 므엉호아 계곡'. 우편번호(zip code)를 불러달라 했더니 "그게 뭐냐" 되묻는다. 몽족 거주지는 지번(地番)이 없고, 간혹 우체부가 아무 데나 우편물을 놓고 가면 '우리 집에 너희 집 편지 있다'고 연락이 온다. 구글에서 어떤 방식으로 검색해도 그 동네 우편번호는 나오지 않았다. 몇 십 분 씨름하다 결국 가장 가까운 도시의 우편번호를 갖다 썼다. 몽족 홈스테이를 검색했을 때 숙소 위치 영문 글자와 구글 지도 표시가 왜 그렇게 불일치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엄밀히 말해 우리는 거짓 정보를 올렸다. 거짓말을 즐겨서가 아니라 실제 삶이 사이트가 제시하는 '추상의 규정'과 어긋났기 때문이다. 기자는 그가 이 사이트를 통해 돈을 많이 벌기를 바랐다. 그러나 혹여 이 사이트가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부실 정보 기재자에게 벌점을 부과한다'고 선언하면? 추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불이익을 받는다. 그것도 다행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설명하는 메일을 보내면 되니까.

    지금 인터넷을 주관하는 '신(神)'은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이 정보 충실도와 고객 만족도 등('등'이 더 중요하다)을 반영했다'고 하면 항의나 해명이 불가능하다. '과학이 한 일'을 어디에 항의하나. 알고리즘에 의한 '배제'는 가해자 지목이 가능한 '사고사'가 아니라 원인 모를 '자연사' 방식이다.

    '알고리즘은 편견의 과학화'라는 주장이 전 세계에서 나온다. 이제는 뉴스의 중요한 유통 경로가 된 페이스북, 유튜브, 아예 대놓고 뉴스 편집자가 된 네이버와 다음 그리고 각종 '등 등' 사이트가 특정한 정치적·문화적·경제적 성향을 보이면서도 '알고리즘' 핑계를 댄다. 알고리즘은 '주체의 익명화'로 세상을 쥐락펴락한다. 비유 하나를 들고 싶다. 과하지 않다고 믿는다. '하나의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알고리즘이라는 유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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