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고 실적' 낸 권오현 부회장 사퇴하는 이유 4가지…연말 삼성 인사태풍 신호탄되나

    입력 : 2017.10.13 15:42 | 수정 : 2017.10.13 21:44

    지난해 6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인텔·워싱턴 포스트(WP)와 함께 개최한‘사물인터넷 정책 포럼’에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기조연설자로 나선 모습./조선일보DB

    삼성전자가 창사 이래 최고의 분기 실적을 발표한 13일, 삼성전자를 이끌던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왜 돌연 전격 퇴진을 선언했을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공석(空席)인 상황에서 안팎으로 삼성전자를 대표해오던 상황이었기에 그의 이날 퇴진 발표는 더욱 갑작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권 부회장은 이날 회사를 통해 보도자료를 내고 반도체사업을 총괄하는 부품부문 사업 책임자에서 자진 사퇴함과 동시에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 의장직도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까지 수행하고 연임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의 퇴진 발표는 삼성전자가 3분기 매출 62조원, 영업이익 14조5000억원, 영업이익률 23.4%의 사상 최고 실적을 발표한 지 불과 두 시간 후에 나왔다.

    권 부회장이 직접 설명한 사퇴의 이유는 이렇다. 그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오래 전부터 고민해 왔던 것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IT 산업의 속성을 생각해 볼 때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지금 회사는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다행히 최고의 실적을 내고는 있지만, 이는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 미래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저의 사퇴가 이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한 차원 더 높은 도전과 혁신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에 몸담아 온 지난 32년 연구원으로 또 경영의 일선에서 우리 반도체가 세계 일등으로 성장해 온 과정에 참여했다는 자부심과 보람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다”면서 “저의 충정을 깊이 헤아려 주시고 변함없이 자신의 소임을 다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권 부회장의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상황에서 ‘그룹 내 최고 어른’인 그가 사퇴 의사를 표명한 이유를 달리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먼저 미래전략실까지 해체된 상황에서 그가 물러나면 삼성그룹이 사실상 경영공백 상태가 초래된다. 따라서 그의 퇴진은 “이재용 부회장을 빨리 풀어달라”는 압력성 메시지를 정권에 보내는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정반대의 시각도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최씨 모녀를 지원하는 데 삼성전자가 관련돼 있는데, 삼성전자 최고경영자이자 이사회 의장인 권 부회장은 아무런 책임이 없느냐는 정권 측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그야말로 ‘과도한 정치적 해석’이라고 삼성 사정에 밝은 사람들은 말한다. 재벌 개혁을 누누이 강조해온 이 정권이 ‘삼성의 경영 공백 위기’ 운운하는 논리로 이 부회장 조기 석방 압력을 가하려는 시도에는 눈도 깜빡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또 이 부회장과 삼성 미래전략실의 수뇌부가 모두 구속된 마당에 그야말로 순수 전문경영인이라고 할 권 부회장까지 굳이 밀어내 논란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권 부회장은 왜 굳이 이 시점에서 용퇴 의사를 표명했을까. 삼성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권 부회장도 현재의 삼성이 처한 상황에 스스로 책임을 나눠지겠다는 뜻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과 최순실 모자 지원을 직접 실행한 것이 삼성전자이다. 권 부회장이 의사 결정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사회 의장이자, 최고경영자인 만큼 전혀 책임이 없다고 볼 수도 없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실제로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는 순간부터 권 부회장이 여러 차례 사퇴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둘째, 타이밍의 문제다. 삼성전자 실적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지금 시점이 사퇴를 공식화하기에 가장 좋다는 것이다. 경영진에 유고가 있는 상황에서 실적이 좋을 때 그만두는 것이 회사에 충격이 적다는 이유다. 실적이 하락하고 있거나 지지부진할 때 최고경영자 교체가 이뤄지면 어떻게든 충격을 받는 것이 불가피하다. 권 부회장 개인으로서도 박수받으며 떠날 수 있고 성공한 CEO로 남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수 있다.

    셋째, 연령 제한의 문제이다. 삼성그룹은 2000년대 이후 사장은 만 60세(인사 시점에 따라 일부는 61세), 부회장은 만 65세까지 현역으로 일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 관례에 벗어난 예는 사실상 전무하다. 삼성그룹 역사에서 내로라 하는 CEO로 꼽히는 윤종용 부회장은 만 64세에 현역에서 물러났고, 이윤우 부회장도 65세에 물러났다. 그보다 윗세대인 김광호 회장도 58세에 물러났다. 이수빈 회장과 강진구 회장이 65세가 넘어서도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 상징적인 직함이었다. 그런데 권 부회장은 올해 만 65세이고, 내년이면 66세가 된다. 통상적인 관례에 따르면 권 부회장의 퇴진도 자연스러운 결정인 것이다.

    넷째, 4년간 누적된 인사 적체 해소와 세대 교체이다. 삼성그룹에선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4년 가까이 CEO 및 임원에 대한 인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장 60세, 부회장 65세’ 기준이 최근 2~3년 사이에 사장급의 경우 일부 예외적인 경우도 생겨났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그룹 내 최고 선임 CEO인 권 부회장 본인이 물길을 터줘야 다른 CEO 인사의 숨통도 터이고, 세대교체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보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올 연말 삼성그룹 CEO 인사는 매우 대규모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아무튼 이번 권 부회장의 퇴진 의사 발표는 삼성전자가 이재용 부회장 구속이라는 초유의 위기상황 속에도 시스템에 따라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조직원들에게 쇄신을 촉구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그는 이재용 부회장 구속수감 이후 수 차례에 걸쳐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며 전 직원에 이메일을 보내고 쇄신을 주문했었다.

    권 부회장은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1985년 미국 삼성반도체 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1988년 4메가 D램, 1992년 64메가 D램 세계 최초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2008년 5월 반도체 총괄 사장을 맡으면서 오늘의 ‘반도체 왕국’ 삼성을 이끌었다. 2011년 연말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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