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기업가 A씨는 북한 그림 수집가다. 주로 6·25 이후 그려진 작품을 수천 점 모았는데, 북한 예술가 최고 칭호인 인민예술가가 그린 작품도 다수 보유했다고 한다. A씨는 “10여 년 전에 산 북한 그림 가격이 300배 오르기도 했다”고 했다.

최상균 아트프롬아시아 예술감독은 20여 년 전부터 포스터 등 북한 체제 선전화와 일반 회화 약 500점을 모아왔다. 독일에서도 활동하는 최 감독은 “유럽에선 북한 포스터가 없어서 못 판다”며 “원화는 장당 1000~3000유로(약 130만~400만원)에 거래된다”고 했다.

중국과 유럽에서 북한 그림이 인기다. “전 세계 유일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품으로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양화가인 문범강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 미술을 “세계 미술계의 갈라파고스”라고 평했다. 추상화로 대표되는 현대미술 사조를 따르지 않고 극사실화, 생활화 위주로 발전하다 보니 독특한 장르를 만들어냈다는 얘기다.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도구로서 체제 선전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미술은 공산권 몰락과 함께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김씨 3대(代) 세습 체제인 북한에서만 명맥을 잇고 있는 셈이다.

해외에 판매되는 북한 미술품은 주로 ‘창작사’라는 조직에서 만든다. 이 중 1959년 설립된 만수대 창작사는 최고로 꼽힌다. 조직원 약 4000명 중 1000명이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인민예술가를 비롯해 공훈예술가, 1급 미술가들이 창작 활동을 이끈다. 아프리카 등 세계 독재국가의 대형 동상과 건축물을 제작해 온 만수대 해외개발그룹도 만수대 창작사 소속이다. 한 미술상은 “중국에서 만수대 창작사 그림은 특히 인기가 높다”며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거래되는 작품이 꽤 된다”고 했다.

지난 8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도발에 대응해 대북 결의안 2371호를 채택했는데, 제재 대상에 만수대 창작사도 포함됐다. 만수대 창작사 해외 자산은 동결되며, 해외 거래도 금지된다. 북한 그림 수집가인 류성백 중국 단둥 진성경무유한공사 대표는 “최근 중국 세관에서 북한 그림을 대량으로 들여오는 걸 막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북중 합작회사로 알려진 베이징의 조선만수대창작사미술관도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곳에선 매년 북한 예술가들이 파견 나와 일하고 북한 미술품도 판매해 왔다. 조선만수대창작사미술관 길정태 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이곳은 북중 합작이 아니라 중국 회사”라며 “북한 미술품을 전시만 했지 판매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최상균 예술감독은 “최근 중국 수집가들은 북한 그림 가격이 뛸 것을 예상해 싹쓸이하듯 사들이고 있다”며 “향후 남북한 문화 교류와 통일 대비 차원에서라도 북한 미술품 수집과 보관, 연구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한편 국내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는 북한 그림은 전시·보관 가치가 작은 작품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미술가 박문협이 그린 ‘전후 40일 만에 첫 쇳물을 뽑는 강철 전사들’(1970). 북한 선전화는 세계 유일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품이란 평가를 받으며 중국과 유럽에서 인기가 높다.
북한은 체제 결속을 위해 미국을 비판하는 내용의 포스터를 많이 그리지만 해외 유출은 엄격히 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협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으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같은 이유로 북한 포스터가 희소성이 높아 유럽 수집가들에게 인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