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포틀럭 추석

    입력 : 2017.10.14 03:02

    [마감날 문득]

    전라남도 큰댁으로 차례 지내러 다녀온 후배가 말했다. "아침 일찍 출발해 내려갔는데 큰집 형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아따, 어제 왔으면 월매나 좋았으까잉. 맛난 것두 묵고 재미지게 놀았을 틴디….' 다음 날 서울로 출발할 때 큰 형님이 본심을 말씀하시더라고요. '잘 올라가고잉, 담서부턴 전날 와서 음식 하는 것두 좀 돕고 혀.'"

    제사나 차례를 치르지 않는 우리 집은 추석이라 해서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는 일이 없다. 올해 추석엔 가족들이 모두 모여 외식을 했다. 명절에 차례 안 지내는 것을 예가 아니라고 흉볼 수도 있겠으나, 맛있는 음식 먹으며 돌아가신 분 생각하는 일이 그 근본이라는 김두규 교수 이론대로라면 부끄러울 것도 없다.

    캐나다 사는 친구가 지난 9일 추수감사절에 캐나다인 친구 가족 만찬에 초대받았다. 캐나다인 친구는 "어른 20명, 아이가 10명 정도 모이는 파티이며 각자 음식을 해오기로 했다"며 이미 약속된 음식 리스트를 보냈다. 만찬 열리는 집에서 추수감사절 음식인 칠면조구이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음식을 가져오기로 했다. 삶아 으깬 감자, 방울양배추 볶음, 양상추찜, 카레 소스 샐러드, 햄과 치즈, 라자냐, 호박 파이.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모든 사람이 네가 가져올 한국 음식에 열광할 거야. 내 생각엔 잡채가 좋을 것 같아." 그 캐나다인 친구는 한국 음식에 대해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많이 안다면 잡채처럼 손 많이 가는 요리를 추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충고대로 잡채를 만들어 가져갔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은 칭찬과 감사의 말을 들었다. 캐나다 보름달이 동그랑땡처럼 예뻐 보이더라고 했다.

    각자 음식을 해서 모이는 서양식 파티를 포틀럭(potluck)이라고 부른다. 16세기 영국에서 손님이 가져온 음식을 '냄비에 담긴 행복(the luck of the pot)'이라고 부르며 쓰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추석 음식을 포틀럭으로 해보면 어떨까. 음식 만드는 노동은 똑같겠지만, 한날 한집 부엌에서 복닥거리며 받는 스트레스는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뭐, 먹고 노는 남자가 뭘 알겠느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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