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 간다" 찔러주고 수시로 100만원씩 상납받았다

    입력 : 2017.10.13 03:11 | 수정 : 2017.10.13 07:13

    [오늘의 세상] 국세청 공무원 비리 실태 첫 공개

    - 5년간 687명 적발했지만…
    내부 적발 306명 대부분 경징계, 뇌물 219명 중 70명만 공직 추방
    자료 공개도 두 달간 끌며 버텨

    - 세무조사 '권력' 악용한 그들
    기업 세금 줄여주며 1억대 챙겨… 세무사와 손잡고 위법 사실 무마
    뇌물 걸리면 다른 뇌물로 막아

    세무조사를 담당하던 국세청 직원 A씨는 부동산 소유권 분쟁 중인 B씨에게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상대방을 압박해 소유권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접근했다. 문제가 해결되면 12억원을 준다는 각서도 쓰게 했다. 이 외에도 그는 '법률 상담' 등의 명분으로 700만원을 챙긴 혐의도 받았다.

    최민식·하정우가 주연한 '범죄와의 전쟁' 같은 영화 속 스토리가 아니다. 지난해 중앙징계위원회가 파면한 세무 공무원의 비리 사례다. 2012년부터 올 6월까지 5년여 동안 징계를 받은 국세청 직원은 687명에 달했다. 3명 중 1명(219명)은 뇌물 수수 혐의로 징계를 받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이현재 의원(자유한국당)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65건의 징계의결서엔 세무 공무원들의 낯 뜨거운 비리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국세청이 그동안 꼭꼭 숨겨왔던 징계의결서가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무 공무원 비리 백태

    세무 공무원들의 비리는 뇌물을 받고 조사를 무마해주는 수준을 넘어 집요하고 다양했다. 검찰 출신의 한 법조인은 "상상할 수 있는 범죄 유형이 다 포함돼 있는 것 같다"며 "실제 적발되지 않은 사례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세무 공무원은 특정 업체의 과세 정보를 무단 유출해 경쟁 업체에 넘겨준 혐의로 지난해 파면됐다. 국세청이 기업의 기밀인 경영 정보를 유출하는 통로가 된 셈이다. 그는 이 업체에 부과된 세금을 줄여주는 대가로 1억2000만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비리 혐의에 대해 경찰 등이 조사에 나서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유관 기관에 4000여만원을 뿌렸다. 그 돈도 물론 업체에서 뜯은 것이었다.

    최근 3년간 국세청 청렴도 순위표

    특정인의 세금 체납 정보를 66번 조회·유출하고 90만원 상당의 향응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한 국세청 직원은 세무조사를 받던 업체 대표에게 "압류에 대비해 부동산을 내 동생 명의로 옮기라"고 제안했다. 업체 대표는 실제로 부동산 90건의 명의를 해당 국세청 직원 동생 이름으로 옮겼다. 그 국세청 직원은 올해 파면됐다.

    세무사·회계사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위법 사실을 눈감아 주는 사례도 있었다. 수도권 국세청의 한 간부는 양도소득세를 부당하게 낮게 신고한 세무사로부터 양도세 조사를 무마해주는 조건으로 500만원을 받았다. 100억원짜리 상가를 23억원에 판 것처럼 신고한 것을 알고도 덮어준 것이다. 법인세 재무제표를 수정해주는 대가로 세무법인에서 2000만원을 받은 국세청 직원도 있었다.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직원끼리 뇌물을 주고받기도 했다. 한 국세청 직원은 비리 혐의로 감사를 받던 동료 세무 공무원으로부터 감사를 무마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1000만원을 받아 그중 500만원을 감사 담당 직원에게 전달했다가 파면됐다.

    단속 정보를 알려주고 수시로 뇌물을 받은 국세청 직원들도 있었다. '카드깡' 업자에게 조기 경보 발령 정보를 알려주고, 카드깡 업자들이 차린 위장 가맹점을 정상 가맹점으로 세탁해주는 조건으로 한 번에 100만원 정도씩 '용돈'을 받아 쓴 것이다.

    국세청 징계의결서, 감사 내용 꼭꼭 숨겨

    이현재 의원은 "국세청에 징계의결서 자료를 요구했지만 두 달간 시간을 끌며 버티다 결국 일부 자료만 제출했다"며 "지금껏 국정감사 때도 제출한 전례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고 말했다.

    공공 감사의 법률에 따라 감사 결과를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관세청·조달청 등 다른 기관과 달리 국세청은 감사 결과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세청이 감사원에 제출한 비공개 사유는 다음과 같다. '일부 납세자들의 탈세 사실이 공개되면 대다수 납세 의무자들의 성실 납세 분위기를 해치게 돼 국가 재정 수입 확보에 문제가 발생한다.' 내부 감사 내용을 공개하면 성실 납세 분위기가 흐려진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이다.

    국세청 징계 현황 자료 등을 살펴보면 국세청의 자체 감사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 식구 감싸기'도 눈에 띄었다. 비리 정도가 무거운 뇌물 수수 혐의 직원 219명 중 70명(32%)만 파면·해임·면직 처분을 받았다.

    전체 687명을 국세청 내부에서 적발한 경우(306명)와 감사원·경찰 등 다른 기관이 적발한 경우(381명)로 나눠 보면 그 차이가 더 뚜렷하다. 외부에서 적발된 세무 공무원 중 파면·해임·면직 처분을 받은 사람은 72명(19%)인 데 반해 내부에서 적발된 공무원은 10명(3%)만 파면·해임·면직 처분을 받았다.

    국세청은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한 공공 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조사 대상 18개 기관 중 16위로 최하위권이었다. 특이한 점은 민원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외부 청렴도는 17위인 반면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부 청렴도는 1위에 오른 것이다. 밖에서 보는 국세청과 내부 직원들이 보는 국세청의 눈높이와 잣대가 크게 다른 것이다.

    이현재 의원은 "국민에게 정직하게 세금을 내라고 하기 전에 국세청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대통령이 부패 척결을 천명한 만큼 철저한 내부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국세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출범시키고 "부정부패 척결을 새 정부 모든 정책의 출발로 삼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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