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돈 좇으면 안돼" 도그마에 빠져… 발묶인 新의료기술

    입력 : 2017.10.13 03:05

    [의료산업을 병원 밖으로] [中] 누가 왜 규제 장벽 세우나

    페이스 메이커 단 심장병 환자, 부정맥 모니터링 안돼 목숨 잃어
    병원은 원격의료 못해 장치 꺼놔…

    민주당·진보 계열 시민단체들
    '보건의료의 공공성'에 사로잡혀 의료기술 산업화는 금기로 여겨

    지난달 심장병을 앓던 72세 남자 환자가 숨이 차고 의식을 잃어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하지만 환자는 수 분 후 사망했다. 사인은 심부전과 심박동이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부정맥이었다. 환자 몸 안에는 심한 부정맥이 생기면 심장에 자동으로 전기 충격을 주는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가 있었다. 심장내과 의료진은 이 환자의 페이스 메이커에서 원격 모니터링 장치만 켜져 있었으면 미리 증세를 파악해 살릴 수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원격 의료 기술, 한국만 열외

    우리나라에서는 페이스 메이커 시술이 한 해 3500여 명에게 이뤄지는데 모니터링 장치를 'OFF'로 꺼 놓는다. 원격 의료 행위에 해당해 불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원격 의료는 현 여당인 민주당이 야당 시절, 의료 민영화 방편과 진료 책임성 문제 등을 들어 반대해 도입하지 못했다. 대한부정맥학회 김영훈(고려대 의대 심장내과) 회장은 "외국 의사들에게 우리는 그런 의료 서비스를 할 수 없다고 말하면, 다들 깜짝 놀란다"며 "생사가 갈리는 부정맥 환자에게만이라도 원격 모니터링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등은 당뇨병 환자 원격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수년 전부터 개발해 놓고 실용화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환자의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장비와 연동시키는 제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IT가 발달하고 임상 데이터가 잘 갖춰진 국내 병원이 오히려 융합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에서 의료진이 중증 환자 혈압·맥박·호흡수 등을 24시간 모니터링하는 IT 시스템을 체크하고 있다. 병원은 이 시스템으로 심장 정지를 24시간 전에 감지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인천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에서 의료진이 중증 환자 혈압·맥박·호흡수 등을 24시간 모니터링하는 IT 시스템을 체크하고 있다. 병원은 이 시스템으로 심장 정지를 24시간 전에 감지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김철중 기자

    인천시의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은 최근 심장 정지 발생 환자를 24시간 전에 찾아내는 프로그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입원 환자의 호흡수·맥박·산소포화도 등 생체 지표를 실시간 모니터링해 감지하는 방식이다. 수만 건의 심장 환자 진료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학습시킨 결과다. 정부 R&D 기금을 통해 이를 일반 심장병 환자에게도 적용하는 국제적인 신기술로 키우고 싶지만 할 수가 없다. 국내선 병원 밖 환자에 대한 원격 모니터링이 불법인 데다, 대학병원이 아니면 사실상 정부 보건의료 R&D 기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규제 논쟁만 하다 세월 보내

    지난 10여 년간 의료산업이 미래 성장 산업이라며 다양한 규제 개선안과 법안이 등장했지만, 논쟁만 하느라 이뤄진 게 거의 없다. 지난 정부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마련하면서 보건의료 분야를 넣으려 했다.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과 진보 계열 의료 시민단체 등은 보건의료 공공성을 훼손한다고 반대했다. 실체 없는 논쟁만 하다 흐지부지됐다. 최근 정부 내에서 '원격 의료'와 '의료산업화'는 일종의 금기어다.

    의료법인 병원 내 자회사 설립도 과잉 논쟁 속에 축소됐다. 의료 기술 사업화를 하려면 회사 설립이 필요하고, 투자가 활성화된다는 이유로 자회사 설립을 도입하려 했지만, 민주당과 일부 보건의료 단체는 의료 민영화의 방편이고, 병원이 영리 추구에 몰두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결국 병원은 장례식장업과 식당업 등만 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의료 산업 활성화 관련 법안, 규제 논쟁 정리 표

    이른바 영리 병원으로 불리는 투자 개방형 병원 도입 사안도 이념 논쟁 속에 묻혔다. 병원 자본력이 커져 의료 서비스가 확대되고, 일자리가 늘고, 국내 병원의 해외 진출에 유리하다는 주장과 병원이 자본에 종속되고, 건강보험 체계가 무너져 의료비가 급증할 것이라는 주장이 맞선 결과였다.

    반대 논리는 의료산업화와 의료의 공공성은 충돌하고 양립할 수 없다는 도그마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의료산업화는 의료서비스 차등화가 아니라 신의료 기술의 사업화가 핵심이다. 전 국민 공공의료서비스를 하는 영국도 막대한 정부 예산을 들여 의료 기술 산업화를 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권용진(공공의료사업단장) 교수는 "역대 정부가 신의료 기술 개발에 이미 수조원의 R&D 비용을 써 왔다"며 "건강보험과 의료서비스 공공성은 탄탄하게 유지하면서 얼마든지 의료 산업화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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