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꽃잎 뒤 가득한 질문… 우리는 왜 사는가

  • 정과리 문학평론가·연세대 교수

    입력 : 2017.10.13 03:05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 심사평<④·끝> 김애란 '바깥은 여름'

    김애란(37)이 일취월장한 분위기가 완연하다. 그의 소설은 애초부터 남다른 데가 있었다. 작품 소재는 흔한 종류였지만 다루는 방식은 독특했다. 가난한 보통 사람들, 요컨대 을(乙)의 애환을 다루되 설움이나 분통의 정서를 담지 않았다. 그 대신 생활의 세목을 감각적으로 환기했다.

    김애란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 - “이번 소설집을 쓰면서 시간에 대해 자주 생각했습니다. 한땐 나이를 먹으며 자연히 잃어버리는 감각이 있지 않을까 두려웠는데, 이젠 그 잃어버림을 통해 내 몸이 시간을 적는 몸, 시간을 쓰는 몸으로 바뀐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위안입니다.”소설가 김애란은 지난 8월부터 폴란드 바르샤바에 머물고 있다.“ 최근 단편‘입동’으로 브로츠와프 국제단편소설축제에 참여했고 바르샤바대학에서 한국문학 특강을 맡게 됐다”고 했다. 그는 11월에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오종찬 기자
    가령 다섯 여자가 한 집에 세 들어 사는 가난의 정황을 두고 "매일 아침 얼굴을 모르는 다섯 여자는 같은 변기를 쓴다. 나는 가끔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물을 안 내리고 간 흔적을 본다"고 썼다. 피곤과 궁핍을 흔적과 냄새로 대신하면서 아주 암시적으로 표현했다. 그 광경을 적나라하게 묘사했을 때의 추잡함을 떠올려 보면 금세 김애란식 글쓰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묘사는 곱게 화장하기보다 꾸밈없는 얼굴을 섬세히 드러내는 식이었다. 그렇게 형상된 모습은 요정 마을 눈 덮인 지붕의 빼꼼히 내민 창처럼 빛나곤 했다. 아마도 그게 인기의 비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글쓰기의 순수한 즐거움에만 몰입하는 듯했다. 요컨대 '왜 그렇게 쓰는가'라는 물음에는 무심한 듯했다.

    이번 소설집 '바깥은 여름'을 보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있다. 의식이 생긴 것이다.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을 왜 나는 맑게 드러내려 애쓰는가? 그런 의식의 발생을 짐작하게 하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본래의 밝은 묘사에 상징적 이미지들이 겹쳐지고 그 이미지들은 세상의 다른 텍스트들을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책 제목부터가 그렇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은 소설 내부는 여름이 아니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걸 이해하려면 여름을 알아야 한다. 그 여름은 "여름은 사랑의 계절"(해바라기 '여름')이라는 대중가요로부터 "여름산은 솟아오른다/열기와 금속의 투명한 옷자락을 끌어올리며"(이성복 '여름산')라는 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여름의 텍스트를 환기하면서 특정한 문화적 의미를 형성한다. 여름은 북적대며 오만방자하게 자기를 과시하는 시절이다. 소설 속 여름은 그 정반대에 해당한다. 왜 저기는 저렇고, 여기는 이런가? 이렇게 소설가는 문화적 의미망 속에 자신이 그리는 인생을 위치시켜 그 의미를 캐묻게 한다.

    문화적 의미가 배어들자 그가 쓰는 사건들은 즉각적으로 의미 자체가 된다. 예전에는 행동만 있었는데, 이제는 움직임이 곧 의식이고 의지이다. 행동을 묘사한다기보다 차라리 행동이 스스로 움직이는 걸 받아 적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가동된 행동은 스스로 변화한다. 가령 이런 구절을 보자. "아내는 연주를 끝낸 뒤 수천 명의 기립 박수를 받은 피아니스트마냥 울었다. 사람들이 던진 꽃에 싸인 채… 그러자 그 꽃이 마치 아내 머리 위에 함부로 던져진 조화처럼 보였다."('입동')

    죽은 아이를 회상하는 아내의 모습이 갈채받는 피아니스트에서 조화를 맞으며 오열하는 엄마로 바뀌어간다. 이제 소설 속의 행동은 소설가의 관조를 통해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장면을 넘기면서, 불행의 우여곡절에 대한 공감과 더불어 심각한 물음 속으로 작가와 독자를 몰고 간다. 소설은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물음으로 가득 찬 깊은 우물이 된다. 묘사에 관한 한 김애란은 한국 문학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서게 됐다. 이 작가가 쓸 날은 아직도 창창하니, 장래가 천천히 눈부셔지기를 바란다.

    [인물정보]
    '동인문학상 후보' 소설가 김애란은 어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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