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방치만 해도 아동 학대다

    입력 : 2017.10.13 03:14

    최재훈 사회부 차장
    최재훈 사회부 차장

    추석 연휴 끝자락인 지난 8일 낮 서울 구로구 한 주택에서 불이 났다. 여섯 살 아이가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집 안에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어머니는 아침에 출근하고, 아버지는 외출해 아이 혼자 집에 있었다. 화장실에서 발견된 걸 보면 아이가 잠들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부모의 방치가 빚은 참변이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라고만 한다.

    또 하나 이목을 붙잡은 것은 괌에서 전해진 '판사 부부' 이야기였다. 괌으로 가족 여행을 떠난 현직 판사와 변호사 부부가 지난 2일(현지 시각) 괌의 한 마트 주차장에서 아들(6)과 딸(1)을 차 안에 두고 쇼핑 갔다가 체포돼 벌금형을 받았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남매는 차 안에서 땀을 흘리며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부부는 머그샷(범인 식별용 사진)과 직업, 실명까지 현지 언론을 통해 그대로 공개됐고 이 소식은 연휴 내내 인터넷을 달궜다. 법조인 부부가 한국에선 처벌도 안 되는 일로 머그샷까지 찍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두 사건의 핵심은 부모의 '아동 방치'다. 미국과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아이를 위험한 상황에 방치하는 것을 아동 학대로 본다. 미국에서 아이를 홀로 집이나 차량에 두는 것은 범죄로 간주한다. 미국 댈러스에서 유학 중인 이모(45)씨는 올 초 아홉 살짜리 아들에게 쓰레기를 버리라고 심부름 보냈다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웃이 '아이에게 노동을 시키는 것 같다'고 신고해서다. 이씨는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잘 몰랐다. 한국에선 자녀에게 심부름을 시키곤 한다"며 해명했지만 경고 조치를 받았다. 이씨는 처벌을 면했지만 상황이 엄중하다고 판단되면 형사 처벌은 물론 양육권을 박탈당하기도 한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수시로 부모가 학대하는지를 묻는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부모 중 일부는 아이들에게 '학교 가서 말 잘못하면 엄마·아빠랑 떨어져 지내야 한다'고 입막음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조선일보 DB
    호주에서는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부모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자녀의 사진을 찍는 것도 금지돼 있다. 아동 성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영국은 2015년 부모가 모욕과 폭언 등 정서적 학대를 했을 때 최고 징역 10년을 선고할 수 있는 이른바 '신데렐라법'을 만들었다.

    우리는 어떨까. 아이를 굶기고, 아파도 치료해주지 않거나 학교를 보내지 않는 정도가 아니면 학대하거나 방치해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드러나도 처벌 사례가 드물다. 방치로 인한 상해·사망에도 고의적이거나 상습적이지 않으면 책임을 좀처럼 묻지 않는다. 이처럼 관대한 여건인데도 지난해 유형별 피해 사례를 보면 방임이 19.2%로 가장 높았다.

    법적·제도적 기준은 치안 상황이나 사회·문화적 특성에 따라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는 말은 하지 말자. 법률 전문가조차 '아이를 방치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고 여기는 인식이 문제다. 뜯어고치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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