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누구에게도 원한 갖지 말고, 이 나라의 상처를 꿰매기 위해…"

    입력 : 2017.10.13 03:17

    '敗將'에 최소한 예우를 먼저 보여줘야
    자신의 지지자 설득해 반대편 지지자 달래야
    과거와 얼마나 잘 싸웠느냐 성적표로 평가받지 않아

    최보식 선임기자
    최보식 선임기자

    이 칼럼은 '헛된 기대'로 금방 판명될 것이다. 법원의 결정은 세간에 널리 퍼져 있는 예측 그대로 나올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拘束)은 당연히 연장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게 옳다거나 어떤 법적 근거를 따져서라기보다 "현 정권에서는 그렇게 될 거야"라고 묵인하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 만기는 16일 밤 12시다. 다음 날부터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미결수(未決囚)는 불구속 재판을 받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현실과 원칙이 다르다는 걸 알고, 현실을 수용하는 자세가 늘 되어 있다. 검찰이 롯데와 SK로부터의 뇌물 관련 혐의로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추가 발부를 요청했을 때도 "세상이 바뀌었으니 검찰은 그렇게 하는 거지"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사람들은 형법의 대원칙을 어기면서까지 그게 구속영장을 추가로 발부해야 할 만한 사안인지를 더 이상 따지지 않는다. 법정에서 이미 한 차례 심리(審理)를 마쳤던 것이고, 공판 과정에서 새롭게 나온 혐의가 아니었다고 해도 괘념치 않는다.

    검찰이 구속 연장 이유로 범죄의 중대성, 도주 및 증거인멸을 하거나 재판을 지연시킬 가능성을 내세운 것도 진부하지만 별도리가 없다. 이는 지난 4월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여부를 두고 이미 한판 벌어졌던 논쟁이다. 삼성동 집에서 취재진에 의해 거의 포위되다시피 한 박 전 대통령이 도주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검찰에서 말하는 증거는 이미 다 수집돼 있고 그 내용은 대부분 알려져 있다. 대인(對人)관계를 너무 가려서 문제가 된 그가 사람들을 불러서 증거인멸을 할 스타일도 아니다.

    법리(法理)로만 따지면 박 전 대통령의 신병에 대한 결정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지금 법원이 고민하고 있는 것은 법리 밖의 문제인 게 틀림없다. 구속 연장과 석방, 어느 쪽 결정이 상대적으로 후유증이 덜 할 것인지를 계산해볼 것이다. 이대로 구속 상태를 연장한 뒤 일주일에 네 번씩 재판을 진행하면 모든 게 순조롭다. "현 정권에서는 그렇게 될 거야"라고 세상 사람들이 예측하는 대로다.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1심 선고가 가능하다. 그 뒤 법에 정해진 기한에 따라 2심과 3심을 해서 '박근혜 문제'를 옥중에서 매듭지으면 된다.

    바뀐 정권에서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은 '리스크'가 너무 심하다. 요즘 법원 앞에는 몇 백 명의 '태극기 군중'이 나와 있지만, 만약에 그를 풀어줬을 때는 '촛불 군중'이 다시 몰려나올 공산이 높다. 사법부가 '적폐 세력'처럼 몰리고, 사법 개혁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다. 해당 재판관은 악성 댓글과 신상 털기의 대상이 되고, 아마 백주에 거리를 다니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개인적인 문제도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반면에 풀려난 박 전 대통령에게 취재진이 따라다닐 것이고, 그의 집 앞에는 지지자들이 진을 칠 것이다. 이들은 구속 기한 만료로 풀려난 것을 '무죄'로 포장해 세력을 재규합할지 모른다. 현 정권의 정통성에 계속 시비를 걸 것이다. 검찰이 우려하는 대로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안 나올 수도 있다. 재판은 늘어지고 강제 구인 절차를 밟아야 할지 모른다. 전직 대통령의 경호 문제가 추가로 생길 것이다. 자칫 1년 전의 혼란 정국으로 되돌아갈지 모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 기간은 16일 24시에 끝난다. /연합뉴스
    재판관도 사람이니까 여러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민이 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법 외적인 요소다. 재판관은 그것까지 고려할 필요가 없고 그런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 고민이나 여론의 눈치를 보는 것은 정치인과 언론인 등으로도 충분하다. 재판관이 법 외적 요소를 고려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소위 '정치 판사'가 되는 것이다. 재판관마다 법의 원칙을 세우는 데 고민하고 그런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을 때 전체 사법부의 독립이 점차 이뤄진다고 본다.

    '박근혜 문제'는 법원의 당면 숙제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그가 통합을 내세우고 있다면 '패장(敗將)'에 대한 최소한 예우를 먼저 보여줘야 한다. 자신의 지지자를 설득해서 상처받은 반대편 지지자를 달래야 한다. 대통령은 나라를 앞으로 얼마나 전진시켰느냐로 평가받지, 과거와 얼마나 잘 싸웠느냐의 성적표로 평가받지 않는다.

    링컨은 숱한 피를 흘렸던 남북전쟁이 거의 승리로 굳어진 1865년 3월 재선(再選)에 성공해 이런 취임 연설을 했다. "우리가 심판받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를 심판하지 않도록 합시다. 누구에게도 원한 갖지 말고, 모든 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께서 우리에게 보게 하신 그 정의로움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갖고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끝내기 위해, 이 나라의 상처를 꿰매기 위해."

    문 대통령은 말은 통합을 외치고 행동은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나라 안에는 상대를 향한 원한과 저주가 콘크리트벽처럼 굳어졌다. 왜 대통령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을 굳이 피해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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