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합숙토론 들어가는 원전 시민참여단에게

    입력 : 2017.10.13 03:15 | 수정 : 2017.10.13 10:44

    재생에너지 확대는 좋지만 '원전은 惡' 주장은 경계해야
    안전 위해 폐쇄해야 한다면서 가장 안전한 것부터 중단하나

    박은호 사회정책부 차장
    박은호 사회정책부 차장

    아랍에미리트(UAE)에선 지금 우리 기술로 짓는 원자력발전소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2009년 '한국형 원전(APR-1400) 수출 1호'로 계약한 원전 4기 중 1호기 공정률이 96%를 넘어 내년부터 가동된다고 한다. 4호기 공정률도 85% 이상이다. 국내업체 기술자로 이곳에서 일하는 A씨는 귀국을 앞두고 이직(移職) 고민에 빠졌다. 중국 원전업체로부터 '연봉 세 배, 5년 계약 보장' 러브콜을 받았다고 한다. 조건도 솔깃했지만 무엇보다 "한국엔 희망이 없다"는 게 A씨 생각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가 "내 제자 얘기"라며 들려줬다.

    서 교수는 "정부가 원전 건설 중단하고 '탈(脫)원전' 한다는데 기술자들이 한국에 무슨 희망을 걸겠나. 우리 선진 기술이 순식간에 중국에 팔려갈 수 있다"고 했다. '한국형 원전'이 지난 9일 통과한 까다로운 유럽 사업자요건(EUR) 인증을 중국은 아직 따내지 못했다. 유럽 수출길이 막혀 있지만 국내 인력·기술이 넘어가면 곧 우리를 따라잡을 수 있다. 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중국은 내심 미소짓고 있을 것이다.

    한국이 UAE에 짓고 있는 한국형 원전 공사 현장. 한국은 지난 2009년 186억달러에 원전 4기를 짓는 계약을 맺었다. /국제원자력기구 제공
    원전 반대론자라면 간과해선 안 될 문제가 있다. 중국 원전 확대에 따른 안전 문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잠시 주춤했지만 중국은 지금 빠른 속도로 '원전 굴기(崛起)'를 추진 중이다. 가동 중인 37기 원전에 더해 2030년까지 100기 이상 가동을 목표로 건설을 추진 중이다. 국내 원전 반대론자들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논란 과정에서 '원전보다 안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중국은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대국"이라며, 우리가 배워야 할 대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내 원전의 사고 위험은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중국에 대해서는 제대로 거론조차 않는다.

    중국 원전 사고는 한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산둥반도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인구 2000만명이 사는 수도권은 반나절, 강원도까지는 한나절이면 방사성 물질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우리가 중국 정부에 원전을 짓지 말라고 해도 먹힐 리 없다. 중국보다 앞선 기술로, 더 안전하게 짓겠다는 원전조차 못 짓게 막는 논리는 이처럼 허망하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당시 36% 수준이던 원전 비중을 2030년까지 59%로 늘리고, 재생에너지는 2.4%에서 11%로 늘리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원전은 18%로 줄이고 재생에너지는 20%, LNG는 37%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에너지 정책은 바뀔 수 있다. 경제성이나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이뤄질 수 있다면 재생에너지는 이보다 더 확대해도 좋을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마치 재생에너지는 절대선(善), 원전은 악(惡)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전은 지구온난화 방지와 미세 먼지 저감에서 재생에너지보다 낫다. 안전성을 높일 기술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이런 원전의 진면목을 제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에너지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원전 안전 문제 때문에 반대한다면, 월성1호기나 고리2호기처럼 노후화한 원전의 가동 연한을 줄이든지, 폐쇄하는 조치를 먼저 요구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더 큰 원전부터 손봐야 하는 게 상식이다. 이런 노후 원전을 놔두고 1조6000억원을 들인 신고리 5·6호기부터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며칠 전 서울대 공대생들은 "탈원전 정책으로 공부하고 연구할 의욕이 떨어진다. 학문이 국가에 버림받는 선례를 남기도록 좌시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냈다. 원자핵공학과뿐 아니라 공대 11개 학과가 동참했다고 한다. 그들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학문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배운 지식으로 밥 먹고 살기 어렵다는 실존적 위기감도 있을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오늘부터 2박 3일 합숙 토론회를 여는 시민참여단이 깊이 들여다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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