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와 나노 기술의 결합… 이 엄청난 야심을 보라

  • 장강명 소설가

    입력 : 2017.10.13 03:05

    [장강명의 벽돌책] 댄 시먼스 '일리움'

    댄 시먼스 '일리움'
    "토머스 호켄베리 박사는 미국 인디애나대학 고전학과 학장이고, 전문 분야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다. 그는 2006년 암으로 사망하는데, 수천 년 뒤 부활한다. 트로이 전쟁이 한창인 고대 그리스를 꼭 빼닮은 세상에서.

    그를 부활시킨 건 올림포스의 신들이다. 이 세계에는 아폴론, 아테나, 아프로디테와 같은 신들이 정말로 있고, 호켄베리 박사는 그들을 위해 종군기자 비슷한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런데 그리스 신들의 초능력은 아무래도 나노테크놀로지를 비롯한 미래 과학의 산물인 것 같고, 그 신들은 '일리아스'의 내용을 알기는커녕 글자도 읽지 못한다."

    댄 시먼스의 대작 SF 소설 '일리움'의 도입부다. 이 책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이렇게 시작한다.

    둘째는 자신들이 하늘에 있는 '후기-인류'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믿는 '고전-인류'의 얘기다. 이들은 순간이동장치로 세계 곳곳에서 화려한 파티를 즐기며 소일한다. 질병도 노화도 없는 낙원 같은 세상이다. 셋째 이야기에서는 화성이 갑자기 지구화한 것을 의아하게 여긴 목성의 유기체(有機體) 로봇들이 탐사를 떠난다. 이 로봇들은 마르셀 프루스트와 셰익스피어 애호가들이기도 하다.

    둘째와 셋째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로 연결되며, 세 이야기는 중반부터 한데 섞인다. 아킬레스와 오디세우스의 모험 사이에 마법사 프로스페로와 괴물 캘리반이 끼어드는 식. '도대체 이런 세계가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라는 질문이 바로 작품의 핵심 미스터리다.

    가볍고 정신없는 패러디로 여긴다면 오산이다. '인간성이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담은 묵직한 소설이다. 실제로도 무겁다. 1부에 해당하는 '일리움'은 942쪽, 2부인 '올림포스'는 1088쪽이고, 두 권 모두 하드커버라 합하면 무게가 3㎏이 넘는다.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로저 젤라즈니를 떠올리게 된다. 신화와 SF를 결합한다는 아이디어, 교양을 현란하게 과시하는 스타일, 미국식 유머와 마초스러운 분위기, 폭력성과 선정성이 두 작가의 공통점이다. 댄 시먼스가 덜 우아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일리움-올림포스'는 각각 그리스와 인도 신화를 소재로 삼은 젤라즈니의 '내 이름은 콘래드'나 '신들의 사회'보다 야심이 훨씬 더 크다.

    원래 벽돌책들은 모두 야심작이다. 소설과 비소설에 다 해당하는 얘기다. 야심작에는, 깔끔하고 완벽한 소품에는 없는 박력이 있다. 그 힘을 맛보려고 벽돌책을 찾아 읽는다. '일리움'과 '올림포스'의 박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분노한 제우스가 내리치는 천둥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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