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세계대전이 경제적 평등을 낳았다고?

    입력 : 2017.10.13 03:05

    "전쟁·혁명·전염병… '폭력적 재난'만이 불평등 해소에 효과" 역사학자 샤이델 주장
    "교육·사회 보험 등으로 빈부격차 완화 가능" 美 학계서 뜨거운 논쟁

    불평등의 역사|발터

    불평등의 역사|발터 샤이델 지음|조미현 옮김
    에코리브르|768쪽
    4만원

    권두에 실린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 '묵시록의 네 기사(騎士)'에 이 책의 핵심이 압축돼 있다. 15세기 말 제작된 이 판화는 전염병, 전쟁, 기근, 죽음 등 세상의 종말이 시작될 때 등장하는 네 명의 기사를 묘사한다. 오스트리아 출신 역사학자인 발터 샤이델(51)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올해 초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에서 출간한 이 책에서 농경시대 이래의 역사를 통틀어 경제적 불평등을 크게 완화시킨 '평준화의 네 기사'를 새로이 명명한다. 대중 동원 전쟁, 변혁적 혁명, 국가 실패, 그리고 치명적 대유행병이다. 저자는 말한다.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평준화는 예외 없이 가장 강력한 충격으로 인해 발생했다. 네 가지 다른 종류의 격렬한 분출이 불평등의 벽을 허물어왔다."(23쪽)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폭력(violence)'이다.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에 '평등한 가난'이 찾아온다는 논리는 익숙한 것이지만 저자는 지니계수와 상위 소득 점유율 등 수치적 근거를 토대로 그 주장에 살을 입힌다. 모든 전쟁과 혁명이 '평준화의 기사'였던 게 아니라 거대한 폭력적 충격일 때 불평등 해소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폭력과 평준화의 상관관계

    저자에 따르면 전쟁은 총력전 형태일 때만 평준화에 기여했다. 전쟁 관련 시책이 사회 전체에 침투해 자산이 가치를 상실해야 빈부 격차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양차 세계대전은 '역사상 최대의 평등화 동력'이었다. 대표적 사례는 일본이다. 1938년 일본의 부유한 상위 1%는 총 신고 소득의 19.9%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7년 안에 이들의 점유율은 6.4%까지 곤두박질 쳤다. 남성 인구의 4분의 1가량이 동원된 2차대전 도발이 그 원인이었다. 전시의 정부 규제, 인플레이션 및 물리적 파괴가 소득과 부의 분배를 고르게 했다. 전후 정책도 평준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군정의 3대 목표는 재벌 해체, 노동의 민주화 및 토지 개혁이었다.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15세기 판화 ‘묵시록의 네 기사’. 그림 오른쪽부터 차례로 세계의 종말과 함께 등장하는 전염병, 전쟁, 기근, 죽음을 상징한다. 저자는 책에서 대중 동원 전쟁, 변혁적 혁명, 국가 실패, 치명적 대유행병이라는 ‘평준화의 네 기사’를 새로이 명명한다.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15세기 판화 ‘묵시록의 네 기사’. 그림 오른쪽부터 차례로 세계의 종말과 함께 등장하는 전염병, 전쟁, 기근, 죽음을 상징한다. 저자는 책에서 대중 동원 전쟁, 변혁적 혁명, 국가 실패, 치명적 대유행병이라는 ‘평준화의 네 기사’를 새로이 명명한다./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혁명으로 가장 극적인 불평등 감소를 이룬 곳은 러시아였다. 러시아의 평준화 및 소득과 부의 재분배는 상당 부분 집단적 폭력의 작용에 기인한다. 혁명 직전 극심했던 불평등은 1917년 볼셰비키의 득세 이후 20년간 극적으로 하락했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대폭 감소시키는 이러한 '압착'의 과정에서 수백만 인민이 죽거나 추방됐다. 저자는 단언한다. "관건은 폭력의 양 자체였다. 양차 세계대전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유혈 낭자한 전쟁이었듯 세상을 가장 평등하게 만든 혁명 역시 기록으로 남겨진 국내의 격변 중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었다."(282쪽)

    저자는 이 밖에 국가 붕괴와 함께 지배 계급이 무너지며 평준화를 낳았고, 페스트로 인한 인구 감소가 임금 상승을 가져왔듯, 자원 불평등의 실질적 감소는 '폭력적 재난'에 달려 있었다고 주장한다.

    ◇'평화로운 대안'은 없다?

    그렇다면 인류의 역사에서 불평등을 완화시킨 '평화로운 대안'은 없었을까? 저자는 토지 개혁, 민주화, 경제발전 등을 살피며 그 무엇도 폭력적 충격만큼 결정적이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한 예로 역사상 토지개혁은 대개 전쟁의 결과였고, 그 밖의 경우 대내외적으로 잠재된 폭력에 대한 우려가 토지개혁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잠재된 폭력에 대한 우려의 대표적인 예가 반(反)공산주의 사상이다. 저자는 한국을 언급한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부의 불균등 분배에 불만을 품은 남한의 소작인을 동원해 체제 전복에 이용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이 공포감이 남한 정부 수립 초기 토지 개혁을 낳았으며 이후 6·25의 영향으로 토지 개혁의 평준화 효과가 증폭됐다고 분석한다.

    그리하여 미래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 완화에 대한 저자의 전망은 암울하다. 대중 동원 전쟁은 도태했고, 혁명은 구닥다리가 되었으며, 국가 실패는 드물어졌고 의학 발달은 전염병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책은 미국 학계에 뜨거운 논쟁을 낳았다. 대공황 시대의 뉴딜 정책처럼 정치·사회 시스템에 의해 분배 불평등이 개선될 수 있다고 믿는 학자들이 저자의 논리를 집중 공격했다. 산업화 초기에는 성공한 소수가 부를 독점하며 빈부 격차가 커지지만 소득 수준 향상, 대중교육, 임금 상승, 사회보험 등으로 완화된다는 관점이 최근까지 불평등 역학 이해의 표준이기도 했다. 저성장과 양극화의 늪에 빠진 한국 사회는 이 책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진다. 원제 'The Great Le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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