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설득하는 글쓰기

    입력 : 2017.10.13 03:05

    [books 레터]

    /어수웅·Books팀장
    사적인 자리에서 젊은 문인들에게 이런 농담 섞은 푸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1970년대, 1980년대 선배들의 시대는 차라리 좋았겠다고. 싸워야 할 독재정권이 있고, 민주화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지 않았느냐고 말이죠. 만장일치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다수가 저항해야 할 굴레와 족쇄의 존재. 하지만 지금은 적이 분명하지 않은 세상이죠. 자유의 결핍이 아니라 자유의 과잉이 문제인 시대입니다.

    이번 Books 커버스토리인 정치학자 강상중과 인터뷰에서도 이 주제가 화제였습니다. 그는 이를 '자유의 아이러니'라고 표현하더군요. 이전 세대들은 그렇게 생각했죠. 우리를 옭아맨 억압과 소외로부터 해방되기만 하면, 사회는 좀 더 좋아질 거라는 낙관. 하지만 어떻습니까. 누구도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전혀 자유롭지 않죠. 선택지가 많아진다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선택할 수 있어 괴롭고요. 어느 것 하나 명확하지 않고, 애매한 시대.

    몸을 던질 대의(大義)가 애매하다 보니, 많은 사람은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합니다. 강상중은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행복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공학적 접근이 지적인 영역에서도 확산되는 추세라고 하더군요. 사회의 수준이 낮아진다는, '사회적 열화(劣化)'라는 비판이었습니다.

    타인과 사회를 비판하려면,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전제되어야 울림이 있습니다. 독자에게 위로와 각성을 주는 작가들을 만나면, 빼놓지 않고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의 글쓰기는 당신에게는 무엇을 주는가. 강상중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박사과정을 마치고도 취직 못 해 힘들던 그 시절을, 살다 보면 자꾸 잊는다. 이번 책을 쓰면서 떠올렸다. 내 원점은 어디였던가. 스스로 다짐한다. 초심을 잊지 말자고."

    글쓰기의 첫 번째 독자는 타인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설득시킬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기란 더욱 어렵죠. 혹시라도 열화가 아닌 우화(優化)를 꿈꾼다면, 그 대목의 인정이 시작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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