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유학의 큰 스승 안병택을 되돌아본다

      입력 : 2017.10.12 11:10

      호남 노사학파 계승, 제주에 전파
      학문 위해 바다건너 전라도 정착
      제주서 온 제자들 길러내 학맥형성

      광주광역시=권경안 기자

      1878년 17살 안병택(安秉宅)은 아버지(安達三)를 따라 제주 조천리에서 돛배로 목포, 영산포를 거쳐 전남 장성으로 갔다. 노사 기정진(奇正鎭) 문하에서 수학한 아버지가 아들을 스승에게 소개하기위해서였다. 제주와 장성을 오갔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대를 이어 사승관계를 이어주기 위한 도해(渡海)였다.

      제주도는 1629년부터 1823년까지 출륙금지령(육지로 나가는 것을 금지한 법령)이 내려졌다. 제주도내 인구감소를 방지하려했지만, 외부 학문을 배우는 것이 사실상 차단당하였다. 유배인들로부터 일부를 접하는 것이 실상이었다. 금지령이 풀리자, 제주 문인들은 육지로 나가 직접 스승을 찾아가 배웠다. 안 부자(父子)는 대표 사례이다.

      아버지 안달삼은 제주도에 유배중이던 추사 김정희로부터 배운 이한진에게서 수학하였다. 면암 최익현이 1873년 제주도에 유배했을 당시 교분을 쌓았고, 스승 기정진의 글을 소개하기도 했다.

      안병택이 장성에 도착한 이듬해 기정진(1798~1879)은 작고했다. 기정진은 호남유학의 대표였다. 큰 범주로 기호학파지만, 19세기 호남에서 그의 호를 딴 노사학파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의 손자 기우만(奇宇萬)이 뒤를 잇고 있었고, 안병택은 기우만으로부터 배울수 있었다. 스승 송사 기우만(1846~1916)은 1896년 호남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의병활동을 하다가 좌절되자 장성 삼성산에 은둔하며 강학하였다.

      19세기 중반 위정척사사상은 화서 이항노와 노사 기정진 등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기정진은 근세 유학의 주리파(主理派)를 대표하는 학자로, 위정척사론을 주장하여 한말의병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조선 성리학 6대가의 한 사람이다. 노사의 문인과 제자들은 주리철학과 위정척사사상을 계승, 호남에서 의병과 항일투쟁으로 외세에 적극 대처하였다.

      1893년엔 작고한 아버지의 유명에 따라 안병택은 제주 가산을 정리하여 스승이 강학하는 전남 장성(월송리 고산마을)으로 이사했다. 학문을 배우기 위해 고향을 떠나게 했던 아버지, 그리고 그 명을 충실하게 받들었던 아들에게는 학문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치였다.

      권수용 조선대 학국학자료센터 전임연구원은 “학문에 대한 굳은 의지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며 “안병택이 육지에 나와 기우만의 문하에 수학하고 강학함으로써 그의 명성은 한층 더 알려져 제주도에서 많은 사람이 그의 문하에 들기 위해 바다를 건너왔다”고 말했다.

      안병택은 1898년 광주 흑석면 장덕리(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로 거처를 옮겨 강학했다. 권 연구원은 “나라를 걱정하던 사람들도 안병택을 통해 육지의 사람들과 접촉했다”며 “안병택은 제주도의 학문을 심화시켰고, 우국지사들을 많이 배출하였다”고 말했다.

      노사학맥의 직계제자인 안병택은 전라도에서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그의 만년까지 학문을 전승하였다. 그의 교유관계는 김희정, 이계징, 김문주, 김수은 등 아버지의 지인을 비롯하여 김석익, 김균배, 이응호, 양성하, 부근회 등 지역의 문인 그리고 그들의 자제로 이어져 제주에 큰 학맥이 형성되었다. 제주에서 광주로 직접 찾아와 배운 사람들이 많았고, 그 제자들은 제주로 돌아가 후학을 길렀다.

      노사의 위정척사사상은 안병택을 통하여 제주에 전수되었다. 그의 제자 의병장 고사훈, 김만석은 의병활동을 도모하였고, 유학자 김석익과 이응호 등은 학문과 저술활동을 통해 후학들의 애국심을 고취하였다. 제주문인들의 연대의식강화와 항일의병운동은 이후 제주도 조천의 항일운동과 민족교육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1861년 제주 조천에서 태어난 안병택은 전남 장성, 광주를 거쳐 목포로 거처를 옮겼다. 1936년 광주에서 별세했다.

      권 연구원은 “안병택이 살았던 시대는 학문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신학문에 밀려 구학문으로 전락한 시대였고, 급변하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위치를 지키며 산다는 것 자체가 힘든 시기였다”며 “그 와중에서도 스승의 학문과 사상을 오롯하게 펼쳐가면서 새로운 이거지와 고향에서 모두 모범을 보인 사실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권 연구원이 쓴 ‘노사학의 제주 전파와 안병택의 역할’논문은 제주도 박물관이 펴낸 전시자료집에 실려있다.

      제주도 박물관은 오는 22일까지 일정으로‘제주 학맥의 큰 스승, 부해 안병택’특별전을 열고 있다. 그의 생애와 학문세계, 교유관계, 제주와의 관계를 알게해주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부해(浮海)는 안병택의 호. 증손 안성모(전 광주시청근무)씨는 “시문집, 연표, 개인문집 등 370여점의 유물을 제주박물관에 기증했다”며 “제주학맥을 형성케한 선조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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