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기 규정에 없다고… 고속도로 사찰·洑 표지판 뽑힐 판

    입력 : 2017.10.12 03:10 | 수정 : 2017.10.12 08:11

    ['깜깜이' 도로 표지판] [下]

    지역 명소지만 불법 안내 표기… 도로공사 "하반기부터 모두 철거"
    인천공항, 1·2터미널 항공사 달라
    출국자 편의 위해 도로 표지판에 항공사명 표기 요구했지만
    국토부 "현행 근거 없다"며 거절

    중앙고속도로 경북 영주시 풍기 IC(나들목) 인근 도로표지판 두 곳에는 이 지역 고찰(古刹)인 '부석사'가 표기돼 있다. 676년 창건한 부석사는 경내에 무량수전(국보 18호)·조사당(국보 19호)·소조여래좌상(국보 45호) 등 많은 문화재가 있어 늘 방문객이 붐빈다. 그런데 연말이면 이 도로 표지판에서 부석사 이름은 지워질 예정이다. 고속도로 표지판에 적을 수 있는 시설물 대상에 사찰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영주시 관계자는 "사찰 이름을 고속도로 표지판에 적은 것은 국토교통부 규정 위반이라는 민원이 들어왔다"며 "규정을 지켜야 하겠지만, 명소이자 역사적 가치가 있는 절 이름이 표기됐다고 표지판을 철거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세세한 표지판 규정, 안내 기능 떨어뜨려

    한국도로공사 조사에 따르면, 전국 고속도로 표지판 가운데 195개에 사찰 이름이, 58개 표지판에는 4대강 보(洑) 명칭이 적혀 있다. 지역 명소나 대표 시설물들이다. 하지만 이 표지판은 관련 규정 위반이다. 현행 '도로표지 제작·설치 및 관리 지침'은 행정구역이나 IC 명칭, 하천 등 도로표지판에 표기할 수 있는 대상을 일일이 열거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택하고 있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적어선 안 된다. 사찰은 국도 표지판에는 적을 수 있지만, 고속도로 표지판에는 안 된다. 장례식장 명칭 등이 표기된 일부 민자 고속도로 도로표지판도 규정 위반이다. 도로공사 측은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올해 하반기부터 단계적으로 사찰 이름 등이 적힌 표지판을 모두 철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바꾸면 알기 쉬울텐데 - 인천공항고속도로 공항분기점에 1터미널과 2터미널 방향을 가리키는 도로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위쪽 사진). 인천공항공사는 내년 초 2터미널(대한항공 등 4개 항공사 사용)이 문을 여는 것에 맞춰 “표지판에 각 터미널을 이용하는 항공사 이름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국토교통부에 요청했다(아래쪽 그림). 하지만 국토부 측은 “규정상 불가능하고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거부했다.
    이렇게 바꾸면 알기 쉬울텐데 - 인천공항고속도로 공항분기점에 1터미널과 2터미널 방향을 가리키는 도로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위쪽 사진). 인천공항공사는 내년 초 2터미널(대한항공 등 4개 항공사 사용)이 문을 여는 것에 맞춰 “표지판에 각 터미널을 이용하는 항공사 이름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국토교통부에 요청했다(아래쪽 그림). 하지만 국토부 측은 “규정상 불가능하고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거부했다. /김지호 기자·인천공항공사
    표기 가능한 명칭을 일일이 규제하는 현행 표지판 규정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운전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표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도로명을 표지판에 표기하는 경우도 늘고 있지만, 해당 지역의 도로 이름을 숙지하고 있지 않은 운전자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운전자 편의 우선 고려해야"

    현행 도로표지판 규정의 맹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인천국제공항이다. 인천공항이 위치한 인천 영종도를 방문하는 사람 중에는 해변·해수욕장 등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공항 이용객이다. 인천공항공사는 현재 사용되는 인천공항 1터미널 북쪽에 2터미널(대한항공 등 4개 항공사 사용)이 내년 초 문을 여는 것에 맞춰 "1·2터미널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도로표지판 밑에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같은 항공사명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최근 국토교통부에 요청했다. 대한항공 승객이 아시아나항공 등을 탈 수 있는 1터미널로 가거나, 아시아나항공 승객이 반대로 2터미널로 잘못 찾아가는 혼란을 막자는 것이다. 2터미널 개항으로 인천공항에 복수의 터미널이 생기면 이처럼 터미널을 착각한 승객들이 비행기 시간에 쫓기는 사례가 하루 760여 건(연간 27만6000여 건) 발생할 것으로 인천공항공사와 대한항공 측은 추정한다.

    하지만 국토부는 "현행 규정에 근거가 없고 항공사를 광고해주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 형평성 문제도 있다"며 이 요청을 거절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영종도 안에 인천공항이 사실상 가장 중요한 시설이고, 승객들이 착각할 수 있다는 사정도 이해된다"면서도 "다른 항공사 측에서 항의할 수 있는 데다, 항공사명을 도로 표지판에 적으면 대형 병원이나 사찰, 대학, 물류회사 등에서 '왜 항공사 이름만 허락하느냐'고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항공사는 "항공사명이 영종도 내 세부 지역명보다 중요하지 않은 정보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개통한 수서발 고속철(SRT) 역명(수서역·동탄역·지제역) 등을 고속도로 표지판에 표시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도로표지 제작·설치 및 관리 지침을 개정할 계획이다. 일부에선 "이참에 절대 도로표지판에 표기해서는 안 되는 것만 규정해두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거나, 아니면 인천공항처럼 특수한 사례에는 예외를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관계자는 "기관·시설 간 형평성도 중요하지만 운전자 편의를 가장 우선으로 고려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