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홍콩에서 열린 홍콩과 말레이시아 간 아시안컵 축구 예선전. 경기에 앞서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이 연주되자 홍콩 팬들이 들어찬 양쪽 스탠드에서 '우~' 하는 야유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일부 홍콩 팬은 아예 국기(國旗)에 등을 돌리고 섰고, 한 축구 팬은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홍콩독립(香港獨立)'이라고 적은 플래카드를 펼쳐 들었다. 중국 국가와 국기에 반감을 터뜨린 이는 주로 10~20대 청년층이었다.

중국 국가(國歌) 문제가 중국·홍콩 간 갈등의 새 불씨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최근 국가(國歌) 모독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이를 홍콩에서도 적용하도록 추진할 방침이어서 홍콩 독립파의 중국 국가 연주에 대한 반발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國歌를 거부한다 - 지난 10일(현지 시각) 홍콩 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컵 예선전 홍콩과 말레이시아 경기를 앞두고 중국 국가(國歌)가 연주되자 홍콩 관중이 중국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등을 돌리고 있다. 일부 관중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X’자 표시를 만들기도 했다.

홍콩 축구 팬들이 중국 국가 연주 때 야유를 퍼붓기 시작한 것은 2015년 6월 홍콩과 부탄의 월드컵 예선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홍콩 청년들이 주도한 민주화 시위인 이른바 '우산 혁명'이 좌절된 지 6개월쯤 뒤였다. 우산 혁명 당시 홍콩 시민들은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79일간 홍콩 주요 도로를 점거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중국의 압박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민주화 좌절에 대한 분노가 축구장에서 야유로 분출된 것이다. 중국 국가에 대한 야유는 이후 홍콩에서 14번 열린 국가대표 간 경기(A매치) 때마다 반복됐다.

홍콩 정부는 처음엔 이를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았다. 홍콩 축구협회가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국제축구연맹(FIFA)로부터 두 차례 벌금을 부과받은 게 전부였다. 그러나 지난달 중국 정부가 국가를 격식에 맞지 않는 곳에서 연주하거나 모독하는 행위를 할 경우 재판 없이 바로 구류 15일에 처할 수 있는 이른바 '국가법(國歌法)'을 만들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중국 매체들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적용받는 홍콩에도 국가법은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한다"고 보도했다. 홍콩 축구 팬들의 야유 행위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 격) 상무위원회는 조만간 홍콩 입법회와 국가법 조항을 홍콩 기본법에 넣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홍콩 축구 팬들은 이런 움직임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중국 국가법이 통과된 이후 홍콩에서 처음 열린 A매치였던 지난 5일의 홍콩과 라오스 경기에서는 홍콩 팬의 야유가 중국 국가를 압도했다. 친중(親中) 성향인 캐리람 행정장관이 이끄는 홍콩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이틀 뒤인 지난 7일 매슈 청 홍콩 정무사장(총리 격)은 "만약 오는 11일 말레이시아와 경기할 때도 야유가 나온다면 앞으로 홍콩에서 치르는 국가대표 간 경기는 무(無)관중으로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그 경고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축구 팬 전부가 야유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지만 야유에 동참하지 않은 관중도 강제적 국가법 도입에는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 시민인 리키 청(35)씨는 FT 인터뷰에서 "정치와 스포츠를 혼동해 나오는 (축구장) 야유는 반대하지만, 홍콩 정부가 대륙(중국)처럼 강제적 국가법을 도입한다면 홍콩의 반중(反中) 감정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했다. 홍콩 야권에서도 "국가법 적용은 일국양제 원칙에 위배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