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사물극장] [15] 이중섭, 은박지에 그린 가족 사랑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입력 : 2017.10.12 03:10

    이중섭(1916~1956)은 가난, 가족과의 이별, 정신 질환, 요절 따위의 이야기를 거느리고 있다. 그걸로 먼저 유명해졌다. '못하는 운동이 없고, 노래도 잘 불렀고, 문학청년으로 시 낭송에도 능수능란한 이 훤칠하고 잘생긴 청년'이 이중섭이다. 불운한 시대였지만 그의 천재성은 '소' '닭' '가족' 따위의 그림에서 형형하게 빛난다. 이 천재 화가의 그림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리 행운이다.

    이중섭의 은지화 '두 아이'.
    이중섭의 은지화 '두 아이'.
    이중섭은 평안남도 평원군 태생이다. 외할아버지 이진태는 평양의 유력한 기업인이고, 형 이중석은 원산에서 백화점을 운영할 만큼 집안이 유복했다. 이중섭은 오산고보를 거쳐 도쿄 제국미술학교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전쟁이 나자 원산을 떠나 부산으로 피란을 내려왔다. 일본인 아내와 두 아들은 일본으로 보내고, 자신은 실향민으로 동가식서가숙하며 떠돌았다. 끝내 정신 질환을 얻어 대구 성가병원, 서울 수도육군병원, 성베드로병원, 청량리 정신병원을 떠돌다가 1956년 9월 6일 서대문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그의 나이 39세였다.

    이중섭의 은지화는 전후 유화 물감과 캔버스 따위 그림 재료의 절대 결핍에서 태어났다. 화가는 담뱃갑 은지에 송곳으로 선을 긋고 그 위에 색깔을 칠한 뒤 헝겊으로 문질렀다. 부산 피란지에서 시인 구상을 만났을 때 이중섭은 말했다. "이즈음 담배 은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네. 한묵이 양담배 몇 갑을 주길래 그걸 다 피우고 은지에 그림을 새겨봤지. 아주 재미있는 것이 되더군." 1952년 7월 무렵 이중섭은 부산 광복동의 '금강다방'이나 '밀다원'에서 못이나 송곳, 골필로 은박지에 선묘(線描) 그림을 그렸다.

    은지화에는 게, 꽃, 나무, 복숭아, 아이들이 나온다. 화가는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싶은 몽유도원(夢遊桃源)을 새겼다. 비록 가난과 병고로 비참하게 살다가 죽었지만 그림 속 세상은 꿈결같이 평화로웠다. 은지화는 대략 300점 안팎이 있으리라는 증언이 있지만 정확한 통계는 없다. 이 은지화는 에스키스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지만, 창의와 독보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도 있다. 뉴욕 근대미술관인 모마(MoMA)가 소장한 것을 보면 이 은지화가 세계 미술사에서 희귀한 것만은 분명하다.

    [인물정보]
    '천재 화가' 이중섭은 어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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