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우유 소화 못하는 아이들 위해 '베지밀' 만든 두유산업 개척자

    입력 : 2017.10.11 03:05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
    본업은 소아과 의사… 33년간 학생들에 장학금도

    한국 두유(豆乳) 산업의 '개척자' 정재원(100·사진) 정식품 명예회장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
    /정식품
    고인의 본업은 의사였다. 1917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19세이던 1936년 의사 검정고시에 합격해 소아과 의사가 됐다. 당시에는 배가 불룩 솟고 묽은 녹색 변을 계속 쏟아내는 '설사병'에 걸려 목숨을 잃는 유아가 적지 않았다. 고인은 유아가 원인 모를 병으로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데 무력감을 느끼고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1960년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설사병이 모유·우유의 성분인 유당(乳糖)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유당불내증' 때문이란 것을 알아냈다. 한국인은 서양인과 달리 선천적으로 유당 분해 효소가 없는 경우가 전체 인구의 75%에 이른다.

    1965년 귀국 후 '정소아과'를 개업한 고인은 병원 건물 3층에 연구소를 만들고 유당이 없는 '우유 대체식'을 찾아 나섰다. 그는 단백질·탄수화물·지방이 고루 들어 있으면서도 유당이 없는 콩에 주목했다. 유당불내증 신생아들이 정소아과에 가서 회복됐다는 소문이 퍼지며 환자가 몰렸다. 고인은 부인과 매일 밤 맷돌로 콩을 갈아 하루 40~50병의 두유를 만들었지만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는 1973년 정식품을 설립하고 두유 대량 생산에 들어갔다. '식물성(vegetable·베지터블) 우유(milk·밀크)'라는 뜻에서 제품 이름을 '베지밀'로 지었다. 1984년엔 충북 청주에 세계 최대 규모의 두유 생산 시설 공장을 준공했다. 정식품 측은 "지금까지 팔린 베지밀 수는 약 150억개"라고 했다. 정식품의 두유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51%다.

    고인은 사회 공헌 활동도 꾸준히 펼쳐 왔다. 의료 서적 등사공으로 일하며 의사 고시를 준비했던 그는 "누구든 공부에 대해 가슴앓이를 하지 않게 만들어 주고 싶다"며 1984년 자신의 호 혜춘(惠春)을 딴 '혜춘장학회'를 설립했다. 지난 33년간 약 2350명의 학생에게 21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고인은 2002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두유 연구·개발(R&D) 활동은 지속적으로 해왔다. 평생에 걸친 콩 연구에 대한 공적을 인정받아 1999년 국제대두학회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정성수 정식품 회장과 딸 정조숙·정명숙·정인숙·정민숙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2일 오전 8시, (02)3010-2230


    [인물정보]
    '베지밀의 아버지'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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