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한강이 말한 대리전

    입력 : 2017.10.11 03:13

    송혜진 주말뉴스부 기자
    송혜진 주말뉴스부 기자

    소설가 한강이 7일(현지 시각)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에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으로 쓴 글을 읽었다. 한 대목에서 돌부리에 걸린 듯 탁 막혔다.

    그는 '우리는 평화가 아닌 어떤 해결책도 의미가 없고, 승리는 공허하고 터무니없으며 불가능한 구호일 뿐이라는 걸 안다'며 '또 다른 대리전(proxy war)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금 여기, 한반도에 살고 있다'고 썼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터졌던 그 전쟁을 '대리전'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6·25전쟁 당시 우리는 분명 동맹국의 도움을 받았지만, 우리가 그들 '대신' 전쟁을 치른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다시 되짚어본다. 북한은 부지불식간에 대한민국을 침략했다. 우리 군은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겼고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왔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는 듯했으나 중공군이 끼어들면서 상황이 다시 반전됐고, 2년 넘는 휴전협정 끝에 1953년 7월 전쟁은 중지됐다. 1980년대 브루스 커밍스 같은 학자들이 6·25전쟁 원인을 두고 여러 가설과 주장을 쏟아냈으나, 1990년대 초 옛 소련 정부 문서가 공개되면서 이견(異見)은 거의 사라졌다. 김일성이 마오쩌둥·스탈린의 동의와 지원을 등에 업고 일으킨 침략 전쟁임이 자명했다.

    한강은 이미 효력을 상실한 단어를 왜 굳이 썼을까. 미·소 냉전이 막 자리를 잡는 상황에서 우리가 겪었던 참혹한 전쟁을 일컫는 문학적 은유였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잘못 불러주면 잘못 이해하는 법이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가 단어 하나하나의 엄중함을 몰랐을 리는 없을 것 같다.

    1950년 6월 6·25 전쟁 당시 광화문 조선일보사 앞을 북한군 탱크가 지나가고 있다. /조선일보 DB
    한강은 이 글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썼다. 1950년 6월 25일 우리가 겪은 것이 대리전이 아니었듯 지금 우리를 위협하는 '만약의 전쟁' 역시 대리전이 될 수는 없다. 한강은 이 글에서 우리나라가 그때나 지금이나 국제 구도의 희생양인 듯 썼지만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북한이다.

    지난달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72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나는 피란민의 아들이었다"면서 평화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했다. 이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6·25전쟁을 '내전(內戰)'이라고 표현했다. 이 단어에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내전'이라고만 할 때 전쟁을 일으킨 북의 침략 사실이 뒷전으로 밀린다. 커밍스유(類)의 학자들이 6·25 발발 원인을 모호하게 만들 때 즐겨 쓴 단어가 '내전'이다. 이 역시 소련 기밀문서 공개로 '북의 남침' 사실이 명확해지면서 이미 학문적으로도 판단이 끝난 사안이다. 그런데 굳이 내전이란 단어를 대통령 유엔 연설문에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한강의 글과 문 대통령의 연설은 모두 우리 의견을 대변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국제사회는 우리의 목소리를 왜곡 없이 이해하게 됐을까. 대리전과 내전, 두 단어 선택이 아쉬운 이유다.
    [인물정보]
    소설가 한강 '6·25는 대리전' 뉴욕타임즈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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