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고품격 경제로 가는 길, 문예 진흥에 있다

  •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입력 : 2017.10.11 03:17

    새로운 일자리 생길 분야는 이젠 제조업 아닌 '노는' 곳
    실기 교육보다 애호가 키우면 화가·영화인·작가 역량 커지고
    화랑·극장·출판사도 융성하니 문예 진흥이 경제 활력 낳는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오늘날 세계경제는 전반적으로 공급 과잉과 과당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아마도 인구의 2%만 농업에 종사하면 전 인류를 위한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고, 중국만 제조업에 종사해도 전 인류가 쓸 물건을 만들어 내는 데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인공지능에 의한 소위 4차 산업혁명은 서비스산업을 포함한 산업 전반에 걸쳐서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한다. 일손이 덜 필요해진다는 얘기인데 다음 세대에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이 큰일이다.

    필자는 '과거 몇 차례의 산업혁명 때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다'고 믿는 낙관론자가 아니다. 그래서 어디서 일자리가 더 생길 수 있을지 고민해봤는데 마지막까지 일자리 증가를 기대할 수 있는 분야는 관광·게임·드라마·음악 등 콘텐츠, 엔터테인먼트, 스포츠·레저, 문화예술 및 관련 산업 등의 분야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마디로 '노는' 것과 관련된 음악·미술·체육 분야다.

    문예 진흥은 다른 모든 산업에도 돌파구를 만들어 준다. 공급 과잉이란 결국은 수요가 문제라는 뜻인데, 수요는 양적으로만 늘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질적인 고급화를 통해 더 늘릴 수 있다. 이런 고급화는 그 나라의 문화예술 역량에 크게 의존한다. 어떤 나라가 같은 소재를 가지고 훨씬 비싼 제품을 만들고, 동일 기간의 관광에 훨씬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문화예술에 바탕을 둔 높은 국격 때문이다.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문예 진흥을 위한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싶다. 문화예술도 수요 진작의 기본은 해당 분야의 애호가 육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급 학교에서 음악·미술 교육을 할 때 실기보다 감상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지금은 모든 교실에 시청각 기자재가 보급되어 있고 웬만한 교육 목적 콘텐츠는 쉽고 싸게 쓸 수 있으니 음악·미술 감상을 하려면 시청각실로 가야 하던 시대보다 얼마나 여건이 좋아졌는가?

    일반 학교는 문화예술 공급자를 키우는 것보다 애호가를 키우는 것을 임무로 삼아야 한다. 소질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실기를 강요하고 또 그것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아 부담만 주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음악·미술·체육은 출석만 제대로 하면 통과(pass)하는 방식의 평가만 해야 하며 대학 입시에 영향을 미치는 평가는 하지 말아야 한다. 1년에 한 번은 판화라도 사고, 표를 사서 음악회에도 가고, 시집을 한 권이라도 사는 국민을 키워내지 못하면 문예 진흥은 불가능하다.

    정부가 내수 진작을 위해 세제 감면, 금융 지원을 할 때에도 문화예술 부문을 우선하여야 한다.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것이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에 소득을 이전하면 수요가 늘어서 경제의 확대·선순환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면에서라면 가난한 시인이나 연극배우만큼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사람이 또 있겠는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오케스트라 공연 모습. /조선일보 DB
    경기 활성화를 위해 자동차나 고급 가전제품 구매나 부동산 투자에 대해 세제 감면 혜택을 주는 일이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 소비 지출에 대해서 우선하여 세제 감면 혜택을 주어야 한다. 세제 감면은 정책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한시적이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한 10년 한시적으로 또는 문화예술 진흥이라는 정책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한번 해보자는 말이다.

    또한 문화예술 소비에 대해서는 청탁금지법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한도를 높게 해 주어야 한다. 한도를 올리는 논의가 주로 농산물에 집중되고 있는 것 같은데 문화예술 소비 지출의 확대가 한국 경제의 미래에 더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농산물에 대해서 한도를 올리는 것도 물론 찬성이다.

    제조업을 일으키던 초기에 라디오나 컴퓨터를 정부가 대량으로 사서 전국에 뿌려준 것과 마찬가지로 미술은행 등을 통해서 수요를 만들어 주는 것도 방법이다. 감사를 의식해서인지 너무 값을 깎으려고 한다는데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 문화예술의 값을 우리가 스스로 떨어뜨려서야 되겠는가?

    제조업 진흥을 위해 공업단지를 만들어 싸게 분양해 주고 도로·전기·수도 등 인프라를 완비해 준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예술 산업의 인프라인 공연·전시장 등을 확충하는 것은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이다.

    마지막으로 문화예술가들에게 돈을 만들어 주는 산업과 그 종사자들도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화랑, 공연기획사, 출판사와 서점, 극장이 융성하지 못하는데 화가, 음악가, 연극배우, 작가, 영화인들이 역량을 꽃피울 수는 없다. 이 산업들의 경영 여건을 개선해 주는 것도 문화예술산업 융성을 위한 인프라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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