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170m마다 1개꼴 불량 도로표지판

    입력 : 2017.10.10 03:10

    ['깜깜이' 도로 표지판] [上]

    가로수 등에 가려 안보여도 방치… 위·아래 뒤집혀 설치된 곳도 많아
    표지판, 경찰 등 4곳서 각각 관리
    "올림픽대로 표지판 가려져" 민원, 책임소재 가리느라 3년째 그대로

    추석이었던 지난 4일 접속자가 폭주하는 바람에 일부 내비게이션 앱(애플리케이션)은 서비스 장애를 일으켰다. 당시 내비게이션 이용자들은 "순간적으로 길을 잃어 헤맸다"는 불평을 쏟아냈다. 만약 도로 안내 표지판이 제 기능을 한다면 운전자들이 이런 불편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지난 7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벌말교차로에서 팔달구 경기도문화의전당까지 직접 차를 몰고 갈 일이 있었다. 출발 전 지도로 경기도문화의전당이 수원시청 근처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수원시청과 경기도문화의전당은 수원시의 대표적인 공공건물이다. 5㎞ 남짓 떨어진 목적지까지 내비게이션 도움 없이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출발 직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깜깜이 도로 표지판

    벌말교차로 사거리에 진입했으나 수원시청·경기도문화의전당을 안내하는 도로 표지판이 없었다. 직진 후 두 갈래 길에서 수원시청 표지판을 발견하고 좌회전을 하니 수원역 앞 삼거리가 보였다. 차량들이 빈번하게 다니는 교차로였지만 기자가 진입한 방향에선 도로 표지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대방로 샛강역에서 원효대교 방향에 있는 한 도로 안내 표지판이 가로수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좌회전하면 마포대교·여의나루역·여의도한강공원, 우회전하면 63빌딩 방향임을 알리는 표지판이지만 운전 중에는 보기 어렵다. 사진은 원효대교 남단 고가에서 찍은 것이지만 표지판은 바로 옆 여의대방로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대방로 샛강역에서 원효대교 방향에 있는 한 도로 안내 표지판이 가로수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좌회전하면 마포대교·여의나루역·여의도한강공원, 우회전하면 63빌딩 방향임을 알리는 표지판이지만 운전 중에는 보기 어렵다. 사진은 원효대교 남단 고가에서 찍은 것이지만 표지판은 바로 옆 여의대방로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오종찬 기자
    출발 전 봤던 지도를 떠올리며 직진 후 우회전을 했더니 그제야 수원시청 표지판이 보였다. 하지만 이후 네 차례 교차로를 만나는 동안 수원시청 표지판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대신 표지판에는 주로 주변 동(洞) 이름이나 시장(市場) 이름이 계속 바뀌면서 적혀 있었다. 초행자가 표지판에 의지해선 대표적 건물이나 지명을 찾아가기 힘든 것이다.

    관리 소홀로 운전자가 식별조차 할 수 없는 표지판이 많다. 본지가 최근 시민교통안전협회와 함께 서울 영등포구 표지판을 점검한 결과 여의서로 1.7㎞ 구간에서만 가로수에 가려졌거나 설치 방향이 잘못된 표지판이 10개 넘었다. 속도 제한 표지판 위아래가 뒤집혔는가 하면 '양보' 'ㅏ자형 교차로'와 같은 표지판은 벚나무 잎에 완전히 가려져 있었다.

    한 차량은 '우회전 시 자전거 조심' 표지판을 보지 못해 자전거와 충돌할 뻔했다. 일부 표지판은 인도 한가운데 설치돼 행인이 툭툭 치고 지나갔다. 인근 초등학교 정문 앞 '어린이보호구역' 표지판 4개는 가로수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예산 부족에 방치

    표지판이 방치되는 이유는 관리 주체가 각기 달라 체계적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2014년 노량진 올림픽대로 진입로의 속도 제한 표지판이 다른 표지판에 가려졌다는 내용의 민원이 동작구청에 접수됐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책임 소재를 가리느라 해당 표지판은 그대로다.

    도로는 동작구에 있지만 도로 폭이 25m 이상이라 구청이 아닌 서울시가 관리한다. 표지판이 훼손됐을 경우에는 서울시가 교체·수리하는데, 위치를 바꿔야 할 때는 서울지방경찰청이 나서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표지판 하나 고치는데 협조를 구할 곳이 너무 많아 애를 먹는다"고 했다.

    표지판은 도로 안내 표지판과 교통안전 표지판으로 나뉜다. 교통안전 표지판은 각 지방경찰청이 관리한다. 도로 안내 표지판의 경우 일반국도는 국토관리청, 고속도로는 한국도로공사, 지방도는 위치에 따라 각 광역·기초자치단체가 관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표지판 오류가 발견되면 시정을 건의하는 공문을 보내는 정도의 역할만 한다. 김영찬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도로 표지판을 관리할 컨트롤 타워가 없는 것"이라며 "담당 공무원과 직원들의 의지에 따라 제각각 관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도로 안내 표지판의 문구 수정 1건에 인건비·설비 등 최소 30만~50만원이 들고, 표지판 교체는 700만~수천만원이 든다. 하지만 8만8000개(일반국도·고속도로·국가 지원 지방도)의 표지판을 관리하는 국토부가 지난해 표지판 점검·교체 예산으로 배정받은 금액은 70억원이다. 올해는 평창올림픽을 앞둬 42.8% 늘어난 100억원을 배정받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예산을 늘리기 어려워 최소한의 관리만 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도로 안내 표지판의 오류를 자동 분석하는 장비를 개발해 지난해 5월부터 일반국도 도로 안내 표지판을 전수 조사하고 있다. 연구원 관계자는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돼 지자체들에 장비를 홍보했지만 반응은 미온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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