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전략 부재 한·미 FTA 재협상

    입력 : 2017.10.10 03:14

    이위재 산업1부 차장
    이위재 산업1부 차장

    지난 8월 말 서울에서 열린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1차 특별공동위원회를 마친 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뿌듯해 보였다. 미국에서 한·미 FTA를 개정하자고 공식 요청했지만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면서 "양자 합의가 있어야만 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도 같은 취지로 답변했다. 통상 당국자들은 "1차전은 판정승했다"면서 우쭐댔다.

    그 자부심은 한 달여 만에 박살 났다. 추석 연휴 적진(워싱턴 DC)으로 넘어가 치른 2차 특별공동위에서 결국 미국 원래 요구대로 재협상 개시 절차를 밟기로 한 것이다. 결과론일 수도 있지만 "정부가 미국이 재협상에 나선 동기나 이유를 통찰력 있게 보지 못했다" "이미 미국은 재협상을 전제로 깔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FTA 폐기'라는 으름장을 놓은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 세번째)이 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무역대표부에서 열린 '제2차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 참석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등과 함께 양국 FTA 현안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트럼프 대통령이 30년 전 펴낸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이란 책을 보면 감이 잡힌다. 트럼프가 거래를 성사시키는 방식은 간단하고 분명하다. 목표를 높게 잡은 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전진을 거듭한다. 협상 원칙은 "상대가 평정을 잃게 만들어라" "협상 속도를 높이고 싶다면 냉담한 태도를 보여라"에 방점이 찍힌다.

    트럼프는 1987년 자가용 전세기로 쓰기 위해 보잉 727기를 알아봤다. 신형이라면 3000만달러쯤 내야 살 수 있는 항공기. 급매물이 나오자 그는 빨리 처분하려는 매도자 처지를 역이용, 협상장에서 500만달러를 불렀다. 터무니없었지만 다급했던 상대는 1000만달러는 받아야 한다고 버티다 800만달러에 넘겼다. 트럼프에게 "일을 성공시키는 마지막 열쇠는 약간의 허세"다. '트럼프 가문(The Trumps)'를 쓴 그웬다 블레어 작가는 트럼프 특징을 "뻔뻔해지는 것에 인색해지지 마라" "결과에 상관없이 이겼다고 우겨라" "과대 포장을 해라"라고 요약했다. 미국 내에선 트럼프를 '나르시시스트(narcissist)'로 분류한다. 나르시시스트는 본능과 육감을 믿기 때문에 누가 뭐라든 자기 길을 간다. 남들 말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번 한·미 FTA 재협상 과정을 돌아보면 우리 정부는 이런 독특한 기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번번이 적절한 대응 전략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정부가 1차 공동위 때 미국에 한·미 FTA 경제 효과부터 분석한 다음 재협상 논의를 하자고 제안한 게 오히려 미국을 자극했다"면서 "그런 '지연 전략'은 상대가 '폐기'를 선택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할 수 있는 조건에서만 유효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이렇게 갈피를 못 잡다가 구석에 몰렸는데도 여전히 "FTA 개정 절차 추진에 합의한 수준"이라면서 "개정 협상이 시작된 게 아니다"는 청와대 인식이다. 통상 실무자들이 한결같이 "국내 절차는 요식 행위일 뿐 FTA 개정 협상이 시작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단언하는데 무슨 비장의 협상 전략이라도 갖고 있는 건지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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