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최근 북한을 겨냥해 "폭풍 전 고요" "단 하나의 수단" 등 수수께끼식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미국의 속내를 감추는 전략적 모호성을 극대화해 북한의 도발을 제어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10일 노동당 창당 72주년을 앞두고 북한의 추가 도발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행동 가능성을 내비치며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 시각) "폭풍 전 고요"의 의미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특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어 "단 한 가지 수단"의 뜻에 대해서도 "조만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군사 옵션을 시사하며 북한을 위축시키려는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을 쓰는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 대통령이 7일(현지 시각) 백악관 뜰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그는 5일 북한을 겨냥해 “폭풍 전 고요”를 언급한 데 이어 이날은 “북한과 대화는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단 한 가지’ 수단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로이터통신은 “군사행동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한 발언”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모습은 지난 8월 북한의 도발 움직임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언급했던 상황과 유사하다. 북한이 트럼프의 경고에도 '괌 포위 사격' 협박을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었다. 결국 북한은 괌이 아닌 일본 상공으로 미사일을 날렸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모호하지만 미국의 대북 압박은 지난 8월 "화염과 분노" 발언 때보다 더 구체적이고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CNBC는 이날 "트럼프가 (북한과의) 무력 충돌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음을 암시한 것"이라고 했고, 뉴욕타임스도 트럼프 대통령의 "폭풍 전 고요" 발언을 언급하며 "(대북) 군사행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몇 주 동안 북한의 미국 공격에 대한 대응을 거론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서울을 중대한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군사 옵션이 있다"고 했었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그런 군사 옵션의 사례로 대북 해상 봉쇄와 사이버 공격, 추가 파병, 김정은 암살 등을 꼽았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단 하나의 수단"이 군사행동일 경우 선제타격 같은 직접 공격이 아니라 해상 봉쇄 등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그러나 북한이 탄도미사일 도발로 괌이나 하와이 등 미국 영토를 실제 위협하거나 태평양상 수소폭탄 실험 등에 나선다면 북한 미사일 기지 등을 실제로 타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 등 대북 강경파들은 "협상으로 북한의 핵 야욕을 꺾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기 때문에 군사적 해법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초 중국 첫 방문을 앞둔 상황에서 당장 북한에 군사 옵션을 쓰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면서 "대북 경제·외교 압박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돈줄'을 말릴 수 있는 전면적인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개인 제재)' 가동 준비를 마친 상태다. 따라서 "단 하나의 수단"은 지난 2005년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을 제재해 김정일 돈줄을 끊었던 것처럼 전방위 금융 제재를 예고한 의미일 수도 있다. 당시 북한은 "피가 얼어붙는다"는 표현으로 금융 제재의 고통을 묘사했다. 석유 등 대북 에너지 공급 차단을 의미하는 것이란 분석도 있다. 조셉 던퍼드 미 합참의장은 지난 3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김정은이 석유 공급에 특히 민감해한다"며 "과거 석유 공급이 차단됐을 때 북한의 행동에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대북 제재 효과와 관련, 윌리엄 브라운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6일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에 기고한 논평에서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북한 에너지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으며, 경우에 따라 북한 원화 가치의 급락을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 4월과 9월 중국의 대북 원유 공급 축소 가능성이 거론된 것만으로도 평양의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3배로 뛰었다"고 전했다. 여기에 추가 대북 제재가 이어져 북한의 화폐 가치가 폭락할 경우 "20억달러로 추정되는 북한의 외환보유액이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수수께끼식 대북 압박에 대한 냉소적 반응도 적잖다. 크리스 쿤스 상원 의원(민주)은 이날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세계의 관심을 끌기 위해 TV 리얼리티쇼 스타 때 하던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며 "그(트럼프)의 허풍을 고려할 때 미국의 군사행동이 임박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테드 리우 하원 의원(민주)도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단 한 가지라는 것이 당신(트럼프)이 사임하는 것이냐"고 비꼬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5일의 (폭풍 전 고요라는) 수수께끼 발언을 해석하는 도중에 새로운 수수께끼식 트윗이 나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