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잘못 먹고 숨졌다더니… 목졸려 살해됐다

    입력 : 2017.10.09 03:10

    [딸 친구 살해·유기 혐의 '희소병 아빠' 구속… 범행동기엔 침묵]

    국과수 "비닐끈으로 목 조른듯"… 피해자 성폭행 당한 흔적 없어
    망우동 집선 성인용품 등 발견, 도피 도운 30代 지인 구속 수감

    중학생 딸(14)의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이모(35)씨가 8일 구속됐다. 이씨는 자신과 같은 희소 난치병인 거대 백악종(치아와 뼈를 연결하는 부위에 종양이 자라는 병)을 앓는 딸의 병원비 모금 활동을 했다. 치아 중 어금니 하나만 남아 '어금니 아빠'로 불리며 미담의 주인공으로 살았던 이씨는 지난 5일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달 30일 서울 망우동의 집에서 딸의 친구인 김모(14)양을 살해한 뒤 강원 영월의 야산에 시신을 버린 혐의였다. 그는 구속영장이 발부되기에 앞서 중랑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살해 혐의나 동기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국과수 "피해자 목 졸려 타살 추정"

    경찰은 6일 강원도 영월의 한 야산에서 김양의 시신을 수습했다. 시신은 등산로에서 약 40~50m 떨어진 수풀 속에서 발견됐다. 옷은 입지 않은 상태였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결과, 김양은 비닐 소재로 추정되는 끈에 목을 졸려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이 나왔다. 목 뒤의 점출혈, 목 근육 내부 출혈, 목 앞부분의 표피 상처 등이 타살 정황의 근거였다. 성폭행 정황은 없었다고 한다. 이씨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의 집은 강원 영월에 있다. 이씨는 지리를 잘 아는 이곳을 유기 장소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팔·가슴 등에 문신 딸의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야산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 ‘어금니 아빠’ 이모(35)씨가 8일 오후 서울 중랑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다음 휠체어에 앉아 나오고 있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는 “살해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팔·가슴 등에 문신 - 딸의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야산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 ‘어금니 아빠’ 이모(35)씨가 8일 오후 서울 중랑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다음 휠체어에 앉아 나오고 있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는 “살해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종찬 기자

    경찰은 지난달 30일 밤 11시 20분쯤 김양 가족의 실종 신고를 받았다. 서울 중랑구에 있는 김양 집 인근부터 폐쇄회로(CC)TV를 추적한 끝에 지난 2일쯤 결정적 단서를 잡았다. 30일 낮 12시 20분쯤 김양이 친구 이양과 함께 중랑구 망우동에 있는 이양의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찾은 것이다. 지난 1일 오후 5시 18분쯤 이씨가 김양의 시신을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여행 가방을 BMW X1 차량 트렁크에 싣고 떠나는 모습도 확인했다. 이 차는 이씨 형의 지인 소유로 밝혀졌다. 이씨 소유 차량은 미국 포드사의 토러스이다. 평소엔 누나 명의로 된 현대 에쿠스 승용차를 주로 이용했다고 알려졌다.

    ◇시신 유기하고 와서 지인 차량 이용

    경찰은 지난 2일 이씨를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이씨 부녀는 하루 전인 1일 이미 서울을 떠난 상태였다. 경찰은 이씨가 1일 오후 7시 30분에서 9시 50분 사이에 영월에서 김양의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 부녀는 이후 강원 정선군의 한 모텔 등에 머물다 지난 3일 서울로 돌아왔다. 이씨는 BMW 차량을 서울 모처에 버렸다. 지인 박모(36)씨를 불러 그의 차로 딸과 함께 도봉구에 있는 5층짜리 건물의 원룸으로 갔다. 경찰은 "이씨는 박씨의 전화로 집을 알아봤으며, 지난 3일 도봉구 원룸을 월세 계약했다. 경찰의 수사를 피하려고 망우동 집 대신 급하게 새 거처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씨 부녀의 도피를 도왔던 박씨는 범인 도피 혐의로 8일 구속됐다. 경찰은 "박씨는 이씨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김양이 사망했으며, 이씨가 시신을 유기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도움을 줬다"고 했다.

    ◇사고라면 왜 병원에 연락 안 했나

    수사망을 좁혀 나간 경찰은 지난 5일 도봉구의 원룸으로 가서 이씨를 검거했다. 당시 이씨는 수면제를 과다 복용한 상태였으며, 딸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두 사람은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씨는 검거 직후 경찰 조사를 받았다. 김양의 시신을 유기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약 기운이 퍼지면서 정신이 흐려져 주로 경찰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방식으로 의사를 전했다. 그러나 살해했는지를 묻는 말에 대해선 미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봉구 원룸에서 발견된 태블릿PC 속 동영상에서도 이씨는 "내가 자살을 하려고 약을 놔뒀는데 딸 친구가 잘못 먹었다.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 사고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 동영상은 범행을 감추려는 의도로 보인다. 친구의 딸이 집에 와서 약을 잘못 먹고 쓰러졌다면 병원에 연락하는 게 정상이다. 시신 유기 장소를 진술한 점도 살인 혐의에 부합한다"고 했다. 경찰은 이씨의 딸이 사체 유기에 가담한 정황이 있다고 본다. 이양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이씨도 구속영장이 발부됐지만, 건강 상태가 불안정해 병원에 입원해 있다.

    경찰은 앞서 이씨의 서울 망우동 집에서 성행위에 사용하는 기구 등을 발견했다. 이씨가 이 기구로 피해자에게 가학성 성적 행위를 했을 가능성에 대해 경찰은 "기구를 누가 사용했는지, 범죄와의 연관성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라 뭐라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씨에게 전과가 많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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