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북핵 위기發 금융 위기

    입력 : 2017.10.08 03:09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을 신청하면서 전 세계가 금융 위기 공포로 떨던 2008년 9월, 900원대였던 환율이 갑자기 1500원까지 치솟았다. 당시 한국은행을 출입하던 기자에게 싱가포르의 한 외국계 금융기관 임원이 "알고만 있으라"며 전화를 걸어왔다. 한국 시중은행들이 돈을 꾸러 다니지만 아무도 만나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자신이 잡아줬던 미팅도 그날 아침 파이낸셜타임스(FT)에서 한국 위기설 기사를 내면서 취소됐다고 했다. 2007년 말 2600억달러였던 외환보유액은 그해 2000억달러까지 줄어들었다. 외환 위기가 목전이었다.

    9년 뒤인 지난 9월, 기자에게 또 다른 외국계 금융기관 임원 출신의 한 인사가 "미국계 회사가 한국 내 자산을 일부 정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말을 전했다. 이 회사의 외국인 임원들은 북핵 위기가 고조되면 일단 휴가를 내고 홍콩이나 싱가포르로 떠나라는 지시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서울에 폭탄 한 발만 떨어져도 외환시장은 마비될 것"이라며 "그전에 조치를 해놓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3848억달러(8월 말 기준)다. 그래서 안심해도 될까? 2008년에도 정부와 한국은행은 "외환 유동성은 충분하다"고 했지만 외신 기사 한 건 나올 때마다 온 나라가 벌벌 떨었다. 당시 정부와 한국은행은 FT 등에 정정 기사를 요구하고 반박 기고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조선일보 DB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5일 대북 군사 옵션을 거론하며 "폭풍 전의 고요"라고 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총기 참사 와중에도 CNN의 주요 뉴스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유엔총회에서 '말 폭탄'을 주고받았던 지난달 18일부터 23일까지 월스트리트저널 미국판 1면에 총 3번 북한 뉴스가 났고, 이 중 두 번은 톱뉴스였다. 지금까지는 외신들이 북핵 위기 속에서도 한국 경제의 꿋꿋함을 인정했지만, 하루아침에 안면을 바꿔 한국 위기설을 들고 나오면 시중은행 돈줄이 순식간에 말라버릴 수도 있다.

    해법은 2008년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을 제2의 외환 위기로 몰고 갔던 상황은 그해 10월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300억달러의 통화스와프를 발표하면서 한순간에 해결됐다. 300억달러가 우리 경제 규모에 결코 큰돈은 아니었지만, 미국과 체결했다는 이유 하나로 시장은 바로 안심했다. 한·미 통화스와프는 2010년 종료됐고, 2015년엔 한·일 통화스와프도 중단됐다.

    워싱턴에서 한국 뉴스를 보노라면 한국 경제팀은 부동산 정책에 목숨 건 것 같다. 갑자기 달러 공급이 막혔을 때도 재개발·재건축 대책을 붙잡고 있을 건가. 요즘 미국 연준은 한국의 안보와는 상관이 없는, 세계 금리만 결정하는 기관 취급을 받는다. 지금이라도 경제팀은 어떤 안보 위기에도 작동할 수 있는 크레디트라인(신용공여 한도) 확보를 정책의 최우선순위로 올려야 한다. 안보의 기초는 탄탄한 경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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