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이승엽, 마지막 스윙 휘두르며 현역 은퇴…등번호 36번 영구결번

입력 2017.10.03 23:23 | 수정 2017.10.03 23:29

"야구를 시작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국민타자로 지내며 행복과 불행 오갔다. 그래도 행복할 때가 더 많았다"
"정말 나는 행복한 야구 인생을 살았다"

3일 저녁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의 은퇴식에서 이승엽이 행사 중 감회에 젖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야구의 전설’ 이승엽(41·삼성 라이온즈)이 3일 대구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 최종전이 끝난 뒤에 열린 은퇴식을 끝으로 현역에서 퇴장했다.

이날 은퇴식이 시작되자 구장을 환하게 밝히던 빛이 잠시 사라졌다.

곧 빛 한 줄기가 이승엽이 서 있는 무대 위를 비췄다.

이승엽이 3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후 열린 은퇴식에서 은퇴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자 라이온즈 파크를 가득 메운 팬들이 “이승엽”을 연호했다. 이승엽은 물기 맺힌 눈으로 그라운드와 관중석을 돌아봤다.

이어 삼성 선수단의 선물이 이어졌다.

이수빈 구단주가 '이승엽 재단'을 위해 출연금 1억원을 전달했다. 이승엽은 2015년 11월 삼성과 FA 2년 계약을 하며 3억원을 출연해 이승엽 재단을 만들었다. 은퇴 후 꿈나무 야구 선수 육성을 위한 재단 설립 자금이었다.

김동환 라이온즈 대표이사는 순금으로 만든 '홈런 기념패'를 선물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동점 3점포, 2003년 당시 아시아 한 시즌 최다인 56호 홈런,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준결승전 역전포, 2006년 WBC 아시아 라운드 결승 역전 홈런, KBO리그 통산 450호 홈런 장면을 금으로 새겼다.

이어 삼성 주장 김상수가 순금 야구공과 기념 배트를 이승엽 품에 안겼다.

이승엽의 경북고 시절 은사 서석기 TBS 해설위원이 경북고 모자를, 이승엽의 삼성 입단 당시 사령탑 우용득 전 감독이 삼성 입단할 때 유니폼을 전달했다.

이승엽은 팬들을 향해 “어릴 때 삼성 선수가 되는 꿈을 꿨다. 다행히 삼성에 입단했고, 우승도 했다”며 “이렇게 은퇴식까지 치르니 난 정말 행복한 선수다. 평생 이 순간을 잊지 않겠다”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3일 저녁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의 은퇴식에서 이승엽이 마지막으로 타석에 서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승엽은 마지막으로 타석에 서서 배트를 잡았다. 마운드 위에서 불빛으로 그린 공 모양이 등장했고, 팬들이 “이승엽 홈런”을 외치자 이승엽은 큰 포즈로 스윙을 휘둘렀다. 터지는 불꽃. 그게 마지막 스윙이었다.

이승엽은 등번호 36이 적힌 유니폼 상의를 벗어 김동환 대표이사에게 반납했다. 그것으로 36은 영구결번이 됐다.

이승엽은 그라운드를 돌며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다시 마운드 근처로 왔다.

삼성 후배들은 이승엽을 높이 들어 헹가레쳤다. 헹가래를 치며 후배 선수 김상수는 울었다. 이승엽은 김상수를 안아줬다. 그게 은퇴식의 끝이었다.

대구 라이온즈 파크 오른쪽 외야 관중석 위 벽에는 이승엽의 얼굴과 함께 36번이 새겨졌다. 이승엽은 그렇게 전설로 떠나갔다.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 이승엽의 은퇴경기가 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렸다. 23년간의 프로 생활을 마무리한 이승엽이 경기 후 열린 은퇴식에서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스포츠조선

이승엽은 현역으로는 마지막으로 한 인터뷰에서 "야구를 시작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며 "국민타자로 지내며 행복과 불행을 오갔다. 그래도 그 덕에 성장했다. 힘들 때도 잦았지만, 행복할 때가 더 많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 눈물의 은퇴식이었다.

"이수빈 구단주를 뵙고 처음 눈물이 났다. 2012년 그룹의 재가가 없었다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경기 전에 류중일 당시 감독님도 뵙고 감사 인사를 드렸다. 2012년 한국으로 돌아올 때 류 감독님과 김인 당시 사장님께서 많이 도와주셨다. 평생 감사 인사를 해야 한다."

- 어머니 영상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은데.

"10년 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당신 건강을 챙기지 못하고 야구하는 막내아들 뒷바라지만 하다가, 당신의 몸이 망가지는 줄 모르고 돌아가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살피지 못한 게 한이 된다. 어머니라는 단어를 오래 잊고 있었다. 어머니 생전 모습을 보니까 눈물이 나더라. 조금만 더 성숙한 아들이었다면, 지금도 살아계셨을 텐데…. 가슴에 맺힌다."

- 유니폼을 반납했다.

"'정말 마지막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삼성에서 15시즌을 뛰면서 팀에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해가 된 적도 있었다. 나 때문에 집중해서 플레이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 은퇴경기에서 홈런 2개를 쳤다.

"정말 다행이다. 아버지(이춘광 씨)도 오시고 아들도 왔다. 잘하고 싶었다. 또한 팬들께 송구스러운 모습 보여드리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오늘 우리 팀이 승리했다. 비록 9위로 시즌을 마치지만, 내년 삼성 라이온즈에 희망이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 너무 이른 은퇴가 아닐까.

"떠나야 할 때다. 야구를 더는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은퇴를 너무 빨리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후배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더 응집력 있고 집중력 있게 경기했으면 한다. 후배들과 미팅을 하면서 '선배로서 2년 연속 팀이 9위를 하게 해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전통 있는 팀에서 15년을 잘 뛰었는데, 팀이 어려운 상황을 맞을 때 떠난다.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 선택의 갈림길에 선 적이 많다. 가장 잘한 선택은 무엇인가.

"최고의 선택은 야구를 시작한 것이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구를 시작했다. 그때 야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승엽은 없었을 것이다. 이후 모든 선택은 내가 했다. 대체로 내 선택이 모두 옳았다고 생각한다. 은퇴 시점을 내가 정한 것도 잘한 선택이다."

- 현역을 떠난 첫날인 내일, 무엇을 할 것인가.

" 내일 추석인데 차례를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냥 쉬고 싶다. 모레부터는 골프를 하러 갈 생각이다."

- 마지막 응원가를 들을 때 심정은 어땠는가.

"정말 좋은 응원가라고 생각했다. (웃음) 언제 이런 함성을 또 듣겠는가. 나는 정말 많은 걸 받고 누렸다. 내 은퇴식이 열린 10월 3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 둘째 등하교를 책임질 수 있겠나.

"역시 7살이라 철이 없는 것 같다. (웃음) 현역 때도 쉬는 날에는 아이들 등하교를 도우려고 했다. 이제 시간이 많으니 두 아들 등하교를 자주 도울 생각이다."

- 국민타자로 사는 것이 힘들지 않았나.

"정말 힘들었다. 행복과 불행을 오가는 자리였다. 국민타자라는 단어가 어깨를 짓누르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이라는 수식어는 극소수만 얻는다. 말과 행동에 제약이 따르지만, 행복한 날이 더 많았다. 이런 타이틀이 붙고 나서는 나도 성장했다. 은퇴 후에도 더 말과 행동을 조심할 생각이다."

- 등번호 36번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실 36번을 싫어했다. 신인 때 어쩔 수 없이 택한 번호였다. 그런데 3년째 정규시즌 최우수선수를 받으면서 '36이 내게 맞는 번호'라고 생각했다. 이젠 가장 좋아하는 숫자다. 36이 박힌 내 배트, 장갑, 손목 밴드를 받아간 후배들이 경기 때 사용하는 걸 보고 뭉클할 때도 많았다. 정말 나는 행복한 야구 인생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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