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루냐 "독립 만세" 외쳤지만… 유럽은 아무도 반기지 않았다

    입력 : 2017.10.03 03:02

    [카탈루냐 "투표자 90% 독립 찬성"… 스페인 정부 "애초에 위헌"]

    카탈루냐 "우리가 승리했다"
    적법성 논란에도 곧 독립 선언… 중앙 정부와의 대립 격화 불가피
    EU 다른 나라도 독립 인정 안해

    총리 "대화 門 완전 닫진 않아"… 자치권 문제 극적 합의 가능성
    美 언론 "스페인, 미지의 세계로"

    "카탈루냐의 독립을 향한 문이 활짝 열렸다."

    2일 오전 0시 20분쯤(현지 시각) 스페인 카탈루냐 주도(州都) 바르셀로나에 등장한 카를레스 푸이그데몬트 카탈루냐주 자치정부 수반의 목소리에 결연함이 묻어났다.

    주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함께 TV에 등장한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오늘 카탈루냐 시민들은 희망과 고통의 하루를 보냈다"며 "우린 (분리·독립 투표에서) 승리했고 독립 국가를 가질 권리를 쟁취했다"고 했다. 그는 "며칠 안으로 주의회에 투표 결과를 보내고, 독립 선언을 위한 합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했다. 바르셀로나 거리에서는 독립을 찬성하는 시민 수천 명이 카탈루냐 깃발을 흔들며 환호했다.

    카탈루냐 독립 투표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전날(1일) 실시된 분리·독립 주민투표 집계 결과 90%의 찬성으로 가결됐다고 발표했다. 호르디 투룰 자치정부 대변인은 "전체 유권자 530만명 중 42.3%가 참가했다"며 "독립 찬성이 200만명을 넘은 반면, 반대는 17만7000여 명에 그쳤다"고 했다. 카탈루냐 측은 조만간 독립을 공식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카탈루냐 자치정부 측의 '투표 승리' 선언에도 불구하고, 카탈루냐가 실제로 독립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違憲) 판결을 받은 이번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스페인의 여야 주요 정당 모두 카탈루냐 독립을 반대하고, 수도 마드리드 등 카탈루냐를 제외한 스페인의 다른 지역에서도 카탈루냐 독립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카탈루냐의 독립을 위한 투표는 없었다"며 "카탈루냐 주민 다수는 이번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 투표를 계기로 스페인 중앙정부와 카탈루냐 간 갈등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악화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카탈루냐 독립 지지 세력은 "경찰이 시민들을 폭행했다"며 라호이 총리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중앙정부는 "국가적 대혼란을 낳은 책임은 카탈루냐 지도자들이 져야 할 것"이라고 맞섰다.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중앙정부의 압박에도 카탈루냐가 독립 투표를 강행하면서 스페인의 헌법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며 "이 나라가 미지의 영역에 빠져들고 있다"고 했다.

    투표가 적법한 절차·방법에 의해 실시됐느냐를 놓고도 격론이 일어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는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정확히 몇 명이 투표했고, 개표는 누가 어떤 절차를 통해 실시했는지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독립 반대 측은 '이번 투표에 참가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 여러 번 투표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고, 폴리티코도 "한 사람이 두 번 이상 투표했다는 미확인 보도도 있다"고 했다.

    스페인 중앙정부와 카탈루냐 측이 정치적 대화를 통해 극적 합의를 이뤄낼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라호이 총리는 이날 "조만간 모든 정당이 참여한 가운데 이 사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치적 타결이 이뤄질 경우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더 큰 자치권을 얻고, 세금과 예산 분야에서도 자율성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카탈루냐 독립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푸이그데몬트 카탈루냐 수반은 "유럽은 더 이상 다른 곳을 바라보면 안 된다"며 유럽의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유럽 국가 중 카탈루냐 독립 투표를 인정하겠다는 나라는 아직 없다.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은 카탈루냐 독립 투표가 유럽 통합을 방해하고 각국 분리·독립주의 세력을 자극할까 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투표 결과에도 불구하고 카탈루냐가 독립에 더 가까이 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한편, 카탈루냐 측의 투표 강행에 맞서 중앙정부가 원천 차단에 나서면서 일부 지역에선 경찰과 시민 간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일부 투표소에선 시민들이 문을 걸어 잠그자 경찰이 손망치로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투표함과 투표용지를 압수하기도 했다.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경찰의 물리력 행사로 전체 투표소 2315곳 중 319곳이 폐쇄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앙정부 측은 "폐쇄된 투표소는 92곳"이라고 했다.

    부상자들도 속출했다. 경찰은 공권력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상대로 경찰봉을 휘두르고, 고무탄을 쏘기도 했다. 카탈루냐 자치정부 관계자는 "시민 844명이 다쳤고, 경찰도 33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중앙정부의 원천 봉쇄 방침에도 이날 220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카탈루냐 자치경찰인 '모소스 데스콰드라'가 적극적인 봉쇄·차단 작전을 펼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70㎞ 떨어진 '빅'이라는 지방 도시에선 투표소 8곳 모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투표가 이뤄졌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카탈루냐 대부분 지역에선 투표가 순조롭고 평화롭게 진행됐다"며 "투표소 앞에 길게 줄을 선 시민들은 축제 분위기에서 투표를 했고, 자치경찰은 이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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