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연호 전통 살려 단기·서기 병기하자"

    입력 : 2017.10.03 03:02

    개천절 기념 학술회의 발표

    "우리 역사 속에서 19세기 말 부활했다가 20세기 중반 다시 단절된 독자 연호의 전통을 되살려 단기(檀紀)를 서기(西紀)와 병기하자."

    대종교의 단군 영정.
    대종교의 단군 영정.
    1948년 7월 제헌헌법 제정 때부터 사용되다 1962년 1월 폐지된 단기를 다시 사용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조경철 나라이름역사연구소장(연세대 강사)은 2일 한국학중앙연구원 대강당에서 단군학회(회장 정영훈) 주최로 열린 개천절 기념 학술회의에서 한국사의 흐름에 나타난 연호(年號)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 현재 세계 질서를 상징하는 서기와 고유 전통을 담은 단기를 병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조 소장에 따르면 우리 역사의 독자 연호는 고구려 광개토왕이 391년 '영락(永樂)' 연호를 사용하면서 시작됐다. 이는 국가로서 위상이 확립된 데다 중국의 여러 나라가 자기 연호를 사용하는 데 자극받은 것이었다. 고구려는 이후 멸망 때까지 독자 연호를 사용했다. 반면 신라는 법흥왕 때인 536년 '건원(乾元)'을 시작으로 독자 연호를 사용하다가 진덕여왕 때에 당나라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자 650년 중국 연호 '영휘(永徽)'를 받아들였다.

    고려는 태조가 '천수(天授)'란 독자 연호를 사용했지만 광종대 이후부터 중국 연호를 사용하게 됐다. 조선은 건국 이후 줄곧 중국 연호를 사용하다가 갑오개혁 때인 1894년 '개국(開國)' 기년을 사용했고 1896년에 '건양(建陽)'이란 독자 연호를 제정했다. 한민족이 900여 년 만에 독자 연호를 갖게 된 것이었다. 독자 연호는 대한제국에서 '광무(光武)' '융희(隆熙)'로 이어지다가 1910년 나라가 망하면서 끊어졌다. 이 무렵 왕조가 아니라 민족의 기원을 강조하는 '단기(檀紀)'가 급속히 부상해 널리 사용됐다.

    조 소장은 고려 중기에 벌어졌던 연호 논쟁을 주목한다. 독자 연호를 제정해 자주성을 높여야 한다는 묘청과 작은 나라가 독자 연호를 가지면 천하 질서를 어지럽히게 된다는 김부식이 대립하는 가운데, 윤언이는 사대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자기 국가를 높이려는 독자 연호 사용은 중국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경철 소장은 "단기 병기는 서구 문화와 기독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와 문화를 드높이기 위한 것이며, 대한제국에서 시작하여 대한민국에 이르는 정통성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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