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많이 가도 정성으로… 소박하고 정갈해야 진짜 '宗家 음식'

    입력 : 2017.10.03 03:01

    고급 재료 드물고 정성 중요하게
    "故人이 즐기셨던 음식이라면 피자·치킨 올리는 것도 가능"

    "종가(宗家) 음식은 소박하고 정갈합니다. 화려하고 빛나면 그건 가짜예요."

    흔히 종가 음식은 가세(家勢)를 과시하기 위해 호사스러울 것으로 지레짐작한다. 서울 플라자호텔 뷔페 식당 세븐스퀘어에서 만난 종부(宗婦)들은 "종가 음식은 화려하지 않지만 정성이 담긴 음식"이라고 입을 모았다. 플라자호텔은 오는 11월 말까지 전국 열두 종가의 내림 음식을 매주 한 집씩 선보이는 '섬김'·'나눔' 행사를 진행한다.

    경북 예천 춘우재 권진 종가의 조동임(왼쪽) 종부와 안동 진성 이씨 노송정 이계양 종가의 최정숙 종부가 집안의 대표 음식인 산적과 정과를 각각 들어 보이고 있다.
    경북 예천 춘우재 권진 종가의 조동임(왼쪽) 종부와 안동 진성 이씨 노송정 이계양 종가의 최정숙 종부가 집안의 대표 음식인 산적과 정과를 각각 들어 보이고 있다. 종가 명절 음식은 대부분 평범한 재료를 사용하되 시간과 정성을 들여 품격을 높인다. /이태경·장련성 객원기자
    종부들이 선보인 종가 음식은 값비싼 고급 재료를 사용한 경우가 드물었다. 대신 시간과 정성을 들여 품격을 높인 음식이다. 경북 예천 춘우재 권진 종가 조동임 종부(68)가 춘우재 대표 명절 음식으로 꼽는 '집장(集醬)'이 딱 그렇다. "여러 재료를 모아서(集) 만든 귀한 장(醬)이란 뜻입니다. 메줏가루에 쪄서 삭힌 찹쌀을 버무려요. 이걸 가마솥에 다시마, 찐 오징어, 호박오가리, 가지, 대파, 버섯, 고춧잎, 무, 마늘 등 아홉 가지 재료와 함께 넣고 오랫동안 타지 않게 정성 들여 불을 때 끓이죠. 그걸 하루에서 하루 반 정도 숙성시킨 다음 먹습니다." 집장을 조금 찍어 맛봤다. 겉보기엔 거무튀튀한 게 그리 맛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구수하면서 깊은 감칠맛이 혀를 감쳤다. "이걸 드신 손님들이 병(病)도 고칠 것 같다고들 하신다"며 미소 짓는 조 종부의 입가에 자부심이 번졌다.

    (위부터)대추 소박이, 상어 지짐, 가지 불고기, 홍어찜, 고추 부각.
    경북 안동 진성 이씨 노송정 이계양 종가의 '송기 송편'은 소나무 속껍질 송기(松肌)를 쌀가루와 섞어 빚는다. 송기는 기근이 들거나 보릿고개에 먹을 곡식이 떨어졌을 때 우리 조상이 생존을 위해 먹던 대표적 구황 식품. 이계양 종가 최정숙(69) 종부는 "음력 4~5월 소나무에 물이 한창 올랐을 때 송기를 벗겨 말려놨다가 쌀가루와 섞어 송편 반죽으로 쓴다"면서 "은은한 솔향이 난다는 장점도 있지만, 워낙 손님이 많이 오셨기 때문에 양을 늘리기 위해서 송기를 섞기도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남 나주 밀양 박씨 청재공파 박종 종가의 모시 잎 송편은 잘게 찢은 모시 잎을 쌀가루와 섞어 만든다. 모시 잎은 골다공증에 특효라 하여 중년 여성들에게 인기지만, 송기와 마찬가지로 흉년에 먹던 구황 식품이었다. 요즘 유명한 전남 영광의 모시 잎 송편은 큼직하게 빚는다. 지주가 "일 잘해달라"며 머슴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크게 빚은 송편이다. 이를 '노비송편'이라 불렀다. 박종 종가의 모시 잎 송편은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다. 강정숙(66) 종부는 "양반들은 '상스럽다'고 해서 손이 많이 가더라도 송편을 작게 만들었다"고 했다. "크게 빚었다간 할아버지한테 혼나부렀제."

    성균관 박광영 의례부장은 "과시욕으로 차리는 요즘 차례상은 전통과 무관하게 잘못된 문화"라고 했다. "차례(茶禮)라는 단어 자체가 간단하게 음식을 준비하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주자가례' 등 예서(禮書)엔 추석이나 명절에 '구할 수 있는 간단한 채소나 과일을 준비해 올린다'고 적혀 있죠. 돌아가신 분께 술로 교접하는 거니 술은 갖추고, 안주로 삼는다 생각하고 적, 떡, 과일 등을 한 가지씩 차리면 알맞을 듯합니다. 별식으로 추석에는 송편, 설에는 떡국 등 그 시기의 대표 음식을 올리는 것도 좋겠죠." 박 부장은 "고인께서 즐기셨던 음식이라면 어떤 것을 올려도 괜찮다"고 했다. "피자나 치킨, 햄버거 같은 음식도 가능하냐"고 묻자, "전통 음식이 아니라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어떤 마음으로 올리느냐, 즉 정성이 중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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