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자녀 문제로 직장 그만두는 건 '바보짓'… 女性도 스스로 경제력 지녀야"

    입력 : 2017.10.02 03:03

    [여성은 왜 대리·과장이 되면 직장을 떠날까… '여자의 미래' 출간한 신미남씨]

    "여성은 스스로 약하고 보호받는 대상으로 의식
    '여성' 내세워 이득 보려는 일종의 '공주 증후군' 인셈"

    "'왜 일 하느냐'고 물으면 거창한 의미를 대기보다
    '남편 눈치 안 보고 내 돈 쓸 수 있어서' 라고 답변"

    "직장 여성들이 제대로 일을 할 만한 위치인 대리·과장이 되면 하나둘 일터를 떠납니다. 과거처럼 결혼·임신 때문에 사표를 내지는 않습니다. 잘 다니다가 육아(育兒)와 심리적 장벽 앞에서 무너져 떠나는 겁니다. 이 때문에 국내 500대 기업에서 여성 임원의 비율은 2.7%밖에 안 됩니다. 이 중 336개 기업은 여성 임원이 아예 한 명도 없습니다."

    신미남(56)씨와 대담하고 있으면, 자판기 단추를 누를 때마다 준비된 말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두산의 수소전지 사업 부문인 두산퓨얼셀 사장이었다. 한때 국내 30대 그룹에서 비(非)오너 출신으로 유일한 여사장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여자의 미래'라는 책을 냈다. 여성이 육아와 가사문제로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주장이다. 추석 연휴에 가족이 모여 한번 얘기를 나눠볼 만한 소재다.

    신미남씨는“여성이 스스로‘차별 장벽’이라고 생각한 게 실제는 작은 돌부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신미남씨는“여성이 스스로‘차별 장벽’이라고 생각한 게 실제는 작은 돌부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통계청 조사로는 여성의 88.7%가 취업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오히려 남성보다 6.8%나 높습니다. 일하겠다는 욕구가 이렇게 강한데도 육아 문제에 직면하면 떠나는 겁니다. 출근할 때마다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를 보면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일해야 할까'라며 갈등에 빠지는 거죠.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숙제·준비물 등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 시기에 가장 많이 흔들립니다. 자신이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아이가 뒤처지는 것 같은 죄책감을 맛보니까요."

    ―직장과 육아 중에서 후자를 선택하면 마치 잘못됐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저 자신도 수년간 일과 가정이라는 딜레마에서 괴로웠습니다. 돌아보면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습니다. 당장 자녀를 위해 일을 그만두는 것은 '쉬운 선택'입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제 기준에서 보면 그건 정말 바보짓입니다."

    ―나름대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일 텐데 이를 '쉬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학원에 가는 걸 뒷바라지해주는 게 아닙니다. 아이가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기간은 길어봐야 10년도 안 됩니다. 10년간 아이를 키우고 난 뒤 50년을 더 살아야 합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알뜰하게 살림하며 목돈을 마련하는 걸 미덕으로 생각하던 우리의 젊은 시절과 달라졌습니다."

    ―어느 시기까지는 자녀 곁에 부모 중 누군가는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저는 아이를 돌봐주는 아주머니를 고용했습니다. 월세 단칸방에 살 때부터 그렇게 했습니다. 제 봉급이 다 나가는데 왜 아깝지 않았겠습니까. 이게 단기적으로 보면 '비용'이지만 길게 보면 '투자'입니다. 눈앞의 비용이 아까워 자신의 일을 포기하면 투자의 관점에서 현명하지 못한 선택입니다. 자신이 계속 일을 하면 그 이상으로 인적 자산과 지적 자산을 쌓게 되는 겁니다."

    ―가정과 자녀를 돌보는 보람과 중요성이 직장 일보다 못하다고 봅니까?

    "인생에 정답은 없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게 더 보람 있고 의미 있다고 판단하면 오케이입니다. 대신 남편과 자녀를 위해 희생했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선택에는 후회가 없어야 합니다. 다만 여성이 일을 포기하고 집 안에 있으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치와 행복의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직장 일을 안 한다고 자존감이 떨어질까요?

    "좀 더 현실적으로 답하겠습니다. 남편은 언제 구조조정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심지어 이혼(離婚)은 일반적 현상이 되고 있습니다. 의학 발달로 기대 수명이 늘어나고 여성이 남성보다 7년을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자녀에게 더는 노후를 의존할 수도 없어요. 여성이 심리적·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가정 내에서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기에도 스스로 경제력을 지니는 편이 좋습니다. 여성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가정과 사회, 국가가 바뀝니다."

    ―가정의 주도권은 경제력과 무관하게 이미 여성에게 넘어가지 않았나요?

    "젊은 직장 여성에게 '왜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거창한 의미를 대기보다 '남편 눈치 안 보고 내 돈을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사회적으로도 여성이 자신의 일을 계속해야 할 이유가 있어요. 저성장과 인구감소, 노령화로 경제 인구가 줄고 있습니다. 대안은 여성 인력뿐입니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남성보다 높습니다. 급격한 기술 발달로 직장 문화와 근무 방식이 바뀌고 있어요. 소통·공감·적응력에서 강점이 있는 여성에게 일하기 좋은 환경이 되고 있습니다. 이미 전자제품과 스마트폰은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일정 부분 해방시켰고요."

    ―사는 방식은 바뀌겠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가정의 가치는 소중합니다. 직장 여성이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의 여러 조건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결정이었을 겁니다.

    "자기가 스스로 만든 '심리적 장벽'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닌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어떤 '심리적 장벽'을 말합니까?

    "여성은 직장에 다니면서 스스로 '여자의 역할'에 대해 한계를 설정합니다. '나는 여자니까 차별받고 있어. 인사고과도 좋게 안 주고 핵심 보직도 못 가져. 내가 잘해봐야 어디까지 올라가겠어'라는 생각에 지배되고 있을 때 아이가 아프면 그게 집으로 들어갈 핑계가 되지요. 이런 심리적 장벽이 있으면 육아 문제를 훨씬 더 크게 봅니다. "

    '여자의 미래' 출간한 신미남씨(오른쪽)
    ―'심리적 장벽'이라기보다 현실적으로 그런 장벽이 있지 않나요?

    "물론 '유리 천장'이 있을 겁니다. 첫 직장인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일할 때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업무 발표에서 A등급을 받았지만 연말 평가에는 C등급이 주어졌으니까요. 하지만 요즘 여성들을 직장에서 떠나게 만드는 것은 이런 공고한 차별 장벽이 아닙니다. 어쩌면 장벽이라고 생각한 게 실제로는 작은 돌부리에 불과해요. 장벽이 아니라 그런 돌부리에 넘어진 줄을 모릅니다. 작은 돌부리를 마음속에서 들어내기만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하는 겁니다."

    ―여전히 직장에서 남녀의 기회 차별은 존재한다고 보지 않습니까?

    "제가 겪거나 얘기를 들어보면 요즘 그렇게 기회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상사 입장에서는 남녀 성별을 떠나 일 잘하는 직원을 원합니다. 그런데 여성은 스스로를 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이라고 의식해요. 자신이 필요할 때는 '여성'이라는 점을 내세워 이득을 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일종의 '공주 증후군'이랄까요."

    ―신체적으로 남성과 같을 수 없습니다. 그런 점은 배려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가령 어느 공기업에서는 남성 직원은 의무적으로 지방 현장 근무를 해야 합니다. 여성 직원에게는 선택 사항입니다. 제대로 일하려면 현장을 봐야 하지만 여성이 지방 근무를 자원할 리 없지요. 야간 당직도 선택입니다. 추석 같은 명절 때만 여성이 시댁에 안 가려고 당직을 자원한다고 그 회사 사장에게서 들었습니다. 직장에서 대우를 받으려면 자신의 권리보다 의무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젊은 직장 여성들에게는 '그래 너 잘 났다'는 얘기로밖에 안 들리겠군요.

    "어떻게 들리든 제 경험을 알려주고 싶은 겁니다. 제 현재의 위치만 보면 부모나 남편을 잘 만났거니 여깁니다. 대학 졸업 직후 결혼했던 우리 부부에게는 집도 돈도 없었습니다. 아파트를 장만하는 데 20년 이상 걸렸습니다. 사실 저는 열등감 덩어리였습니다. '미남(美男)'이란 이름부터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님이 아들을 원했던 모양이군요.

    "엄마가 4대 종손 맏며느리였습니다. 딸 셋을 연달아 낳자, 외할아버지께서 제 이름을 그렇게 지었어요. 이름 효과를 봤는지 그 뒤 남동생이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창피했지요. 학기 초가 되면 동급생들이 놀리잖아요. 원하는 대학 진학에서도 실패했어요. 서울대 의대에 떨어져 2차인 한양대 공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3년간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한양대 대학원을 다녔다. 그 뒤 남편과 함께 미국 노스웨스턴대에 유학해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학 시절 아들 둘을 낳았다. 귀국해 삼성종합기술원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어느 날 출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얼굴과 목이 깨졌습니다. 열 시간 넘는 수술 끝에 부서진 코나 귀 뼛조각들을 다시 붙인 게 지금 이 얼굴입니다. 1년간 출근을 못 했습니다. 집 안에 있으니 좌절감이 깊었지요. 삼성이 '신(新)경영'을 선포한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사장님을 찾아가 '삼성의 미래 준비를 위해 선진 기술을 배워오겠다'며 6억원 프로젝트를 브리핑했습니다. 그게 통과돼 얼굴에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채 미국 미시간대학으로 2년간 연수를 떠났습니다."

    귀국한 뒤 그녀는 연구원으로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판단에 맥킨지로 옮겼다. IMF 시절이었다. 그녀는 국내 대기업을 매각하는 팀에서 일했다. 두세 시간씩 자고 새벽 다섯시에 출근했다. 500원 동전 크기의 탈모가 생길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사내 평가가 좋았는지, 차세대 리더 육성프로그램 대상자로서 2년간 캐나다에 파견됐다. 돌아올 무렵 남편이 수소전지 개발 벤처를 차렸다. 그녀가 투자 유치를 담당했고, 결국은 맥킨지를 그만두고 창업 벤처의 경영을 맡았다. 3년 전 이 회사는 두산에 인수·합병됐다. 그녀는 사장직을 유지해오다 지난 금요일 물러났다.

    "저는 어떤 형태로든 일을 계속할 겁니다. 여성이 지금보다 더 무시당하고 더 힘든 시절에도 제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훨씬 좋지 않습니까."

    ―사람은 죽음의 순간을 맞을 때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와 더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한 걸 아쉬워하지만, "내가 그때 일을 더 해야 했는데"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죽을 때 '일을 더 할걸' 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러나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죽을 때 '나는 참 행복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라고 자신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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