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지방 출신 학생 실어나르는 귀향 버스가 사라진다는데…

    입력 : 2017.09.30 03:02

    서울시내 대학 상당수 올해 운행하지 않기로
    학교측 "연휴도 길고 고향 안 가는 학생 많아 작년보다 신청자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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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경희대 학생 74명은 지난 25일 고향에 내려가는 귀향 버스가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경희대 생활협동조합은 추석 때 고향에 가는 학생들에게 수요 조사를 해 광주·목포·부산·대구 등 4개 노선만 운영키로 했다. 부산행 표가 8000원일 정도로 저렴하지만 대전·여수·청주·경주 등으로 가는 버스는 기준 인원 15명을 채우지 못했다. 경희대 관계자는 "연휴도 길고 고향에 가지 않는 학생들도 많아 작년보다 신청자가 줄었다"고 했다. 일부 학생은 "연휴가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표를 못 구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설·추석 때 지방 출신 학생들을 고향으로 실어나르는 대학 귀향 버스가 사라지고 있다. 1990년대 서울권 대학 총학생회나 학생복지위원회에서 시작한 귀향 버스 사업은 버스 회사와 공동 구매 형식으로 계약을 맺어 학교에서 각 지방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대절하는 것이다. 차액은 대개 총학생회 예산에서 부담한다. 차비가 싼 데다가 터미널까지 갈 필요 없이 학교에서 출발해 학교 주변 자취하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휴게소에서 인원을 확인하는 '차장' 역할을 맡는 학생은 공짜로 차를 타기도 한다. 신청자가 몰릴 때는 선착순으로 표가 팔렸다.

    하지만 동향 친구들과 함께 고향에 내려가는 풍경은 서서히 사라질 전망이다. 본지가 한때 귀향 버스를 운행했던 서울시내 대학 10곳을 조사했더니 4곳은 올해 귀향 버스를 운행하지 않기로 했다. 연세대·서강대는 작년 추석에는 귀향 버스가 있었지만 올해는 사라졌다. 이화여대는 2~3년 전부터 귀향 버스 신청을 받지 않아 사실상 폐지 길로 들어섰다. 한양대는 지난해 13개에서 올해 6개로 운행 노선을 줄였다. 한동안 귀향 버스 운행을 중단했다가 최근 재개한 서울대는 올 추석 부산으로 가는 한 개 노선만 운행키로 했다. 중앙대는 출발 3일 전인 26일까지도 총 200여석이 남아 있었다.

    고려대 학생복지위원회(학복위)는 25~28인승 버스 16대를 대절했다. 졸업생과 교직원, 타교생들에게까지 신청을 받았지만 꽉 찬 버스는 한 대도 없다고 한다. 신청자가 없는 노선도 있었다. 올 추석 귀향 버스를 타는 학생은 293명으로 작년보다 100여명 줄었다. 2013년 추석까지만 해도 700명 정도가 귀향 버스를 타고 고향에 갔다.

    1998년 고려대 추석 귀향 버스 탑승자는 3488명. '북부지역학복위연합'에서 진행한 사업이라 성신여대·동덕여대 등 인근 학교 학생들이 섞여 있었음을 감안해도 크게 줄었다. 당시 고려대 서울캠퍼스 학부 재학생은 2만3758명으로, 현재(2만1100명)와 큰 차이가 없다. 최인영 고려대 학복위 위원장은 "귀향 버스는 좌석을 꽉 채워 탄다고 해도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며 "그나마 우리 학교는 귀향 버스 예산 1300만원이 따로 집행돼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 올 추석엔 탑승객 모두에게 여행자보험을 들어주고 좌석도 우등석으로 바꿨다"고 했다.

    긴 연휴를 취업 준비 기간으로 생각하는 대학가 풍토가 귀향 버스 종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울산 출신 대학생 홍모(25)씨는 연휴에 문을 연 카페에서 토익 시험을 준비할 예정이다. 그는 "학기 중엔 영어 점수를 마련할 시간이 따로 나지 않는다. 취업 스터디원들도 모두 서울에 남는 분위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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