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명절 때만 되면 찾아오는 스트레스 증후군

  • 송내과의원 원장·의학박사

    입력 : 2017.09.30 03:02

    [송태호의 의사도 사람]

    점심시간에 병원 근처 재래시장을 둘러봤다. 추석을 앞두고 발 디딜 틈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척 한산했다. 병원에 오는 환자들 얼굴에서도 민족 최대 명절을 맞는 설렘을 보기 힘들다. 명절은 팍팍한 마음을 넉넉하게 바꿔주는 마술을 부리곤 했었는데 이제 그런 마술은 없나 보다. 이번 명절 휴일은 유난히 길어 자영업자들은 속으로 시름이 깊을 것이다.

    40대 여자 환자가 딱히 잘못 먹은 것도 없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을 드나든다고 했다. 청진을 해보니 배 속에서 우르르 쾅쾅 전쟁이 났다. 몸살 기운도 별로 없고 상한 음식을 먹은 적도 없다고 한다. 1년에 몇 번씩 별 이유 없이 그렇다고 했다. 장염약을 처방해줬더니 며칠 후 다시 방문했다. 약을 먹고 좋아졌었는데 약이 떨어지니 증세가 다시 시작됐다고 했다. 1년에 몇 번씩 생긴 이 증세는 알고 보니 명절 때나 시부모 생신같이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였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스트레스 때문에 장이 심하게 움직여 설사를 일으키는 과민성 대장염으로 결론짓고 명절 기간 동안 약을 계속 복용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고혈압과 당뇨로 병원에 다니던 50대 가장은 올 초 실직했다. 재취업이 안 돼 건강이라도 지키자는 생각에 매일 등산을 했다. 하지만 병원에 올 때마다 진찰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았다. 운동의 효과보다 건강을 해치는 스트레스가 더 많았던 까닭이다. 그 환자가 재취업을 한 지 3개월 정도가 되고 나니 혈압과 당뇨 수치가 다시 정상으로 조절이 잘 됐다. 최근 병원을 찾아온 이 환자는 다시 혈압과 혈당이 높아져 있었다. 생활습관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이번 명절을 두고 가족 간 의견차가 있었다. 환자는 본가와 처가 모두 들르고 오랜만에 온 가족이 선산에도 가고 싶어 했는데 가족은 여행을 가고 싶어 했다. 재취업을 하면서 월급이 많이 깎여 여행 비용도 부담스럽고 부모님께도 죄송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며칠 동안 잠도 설쳤다고 했다. 내가 맞장구를 치며 "세상이 다 자기 마음처럼 안 된다"고 한탄했다. 스트레스를 덜 받아야 좋아진다는 말에 그는 "나도 알지만 스트레스를 맘대로 받고 안 받고 할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겠느냐"고 했다. 그의 혈압과 혈당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기에 결국 소량의 신경안정제를 쓰며 명절이 지난 뒤 다시 보기로 했다.

    혼인 적령기의 자녀들, 작년 추석에 이어 올해도 구직 중인 자녀들, 한창 공부할 나이의 청소년들에게는 어른들의 한마디가 가슴에 못을 박기도 한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조언은 십중팔구 잔소리가 된다. 이런 스트레스는 명절 치르기도 전에 사람 몸을 지치게 한다. '신경성'이라고 이름 붙은 수많은 병이 이 시기에 창궐한다. 잘 조절되던 만성 질환자들의 검사 결과가 널 뛰듯 우왕좌왕하는 것 역시 명절 스트레스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해주는 약이 있다면 노벨상감일 것이다.

    올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 온 가족이 찜질방에 가서 무거운 몸을 녹진하게 지지고 묵은 때를 서로 밀어주며 스트레스를 풀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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