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배운 아이들, 가난 벗어나 사장까지… 사람 키운 게 보람

    입력 : 2017.09.29 03:05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50주년, 이탈리아 출신 임충신 修士

    "이 기계는 일부는 외상으로 들여와 우리가 물건을 만들어 팔아서 빚을 갚았어요. 이건 우리 학생들이 만든 물건이고요. 잘 만들었지요?"

    지난 25일 오전 서울 신길동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임충신 마리노(75) 수사(修士)는 센터 곳곳을 안내하면서 반세기 동안의 추억에 빠져들었다. 1960~70년대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기술교육과 학업교육을 통해 꿈과 미래를 선물한 돈보스코 센터가 올해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1963년 한국에 온 임 수사는 설립 준비 때부터 지금까지 이 센터와 함께한 증인이다.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50년의 살아 있는 역사인 임충신 수사가 학생들이 만든 작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50년의 살아 있는 역사인 임충신 수사가 학생들이 만든 작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3000여 졸업생을 배출한 임 수사는“가장 큰 보람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돈보스코 센터를 운영하는 천주교 살레시오회 설립자인 이탈리아 성인(聖人) 요한 보스코(1815~1888) 신부는 평생을 어린이·청소년 교육과 직업훈련에 헌신했다. 살레시오회가 신길동에 기술학교인 돈보스코 센터를 설립한 때는 한국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영등포 일대에 공장이 잇따라 들어서고, 초등학교만 마친 어린이들도 공장으로 몰려들던 시절이었다.

    임 수사는 돈보스코 센터에 안성맞춤인 인재였다. 이탈리아에서 기술학교와 사범학교를 졸업해 기술교사 자격증도 있었다. 살레시오회에 입회해 수련 중 한국에서 활동하던 선배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쟁을 치른 가난한 나라 청소년에게 내가 배운 기계 기술을 가르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한국행을 결심했다. 임충신(林忠信)이란 한국 이름은 스스로 지었다. 자신의 성(姓) 'Bois'가 프랑스어로 '숲'을 뜻하고 요한 보스코 성인의 'Bosco' 역시 이탈리아어로 '숲'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성은 '임'으로 정했다. '충신'은 요한 보스코 성인의 뜻을 충실하게 믿고 따르겠다는 뜻에서 붙였다.

    임충신 수사가 1972년 당시 학생들의 실습을 지도하는 모습.
    임충신 수사가 1972년 당시 학생들의 실습을 지도하는 모습. /돈보스코 청소년회관
    시작은 험난했다. 당시 신길동은 허허벌판, 센터 부지는 도로에서 2~3m 푹 꺼진 땅이었다. 트럭으로 쓰레기 5만대, 토사 1만대 분량을 쏟아부어 땅을 돋웠고, 독일의 가톨릭 단체를 통해 급한 자금을 지원받았다. 임 수사와 동료들은 버려진 나무판자와 파이프를 이용해 책걸상을 만들었고, 1967년 3월 3일 첫 입학생 19명을 받아 무료로 먹이고 재우고 가르치는 돈보스코 센터를 열었다. 아이들 먹을거리는 삼립빵에서 기증받았고, 간식거리와 야유회 텐트는 미군부대에서 얻고 빌렸다.

    최근 센터가 펴낸 500쪽짜리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50년'을 보면 지금은 기억이 희미해진 '기름땀' 냄새가 생생하다. 특히 취업한 동문들이 돈보스코 성인의 동상을 기증한 사연은 감동적이다. 공장에 취직한 동문들이 월급의 30분의 1씩 저축하고 광주 살레시오 학교 동문들까지 힘을 모아 1988년 돈보스코 성인이 두 아이의 어깨를 감싸는 모습의 동상을 세운 것. 당시 세계 70여 개국 돈보스코 교육기관 중 동문들이 자발적으로 동상을 세운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은 이곳에서 익힌 기술로 자격증 따고, 취업하고, 진학하고, 가정 꾸리고, 기업가가 되기도 하면서 꾸준히 센터에 기부금을 보내오고 있다. 3년 과정으로 시작한 청소년센터는 현재는 1년 과정으로 운영한다. 무료로 하며 지금까지 졸업생은 3000여 명을 헤아린다.

    수사는 반세기 동안 가장 보람 있는 일을 묻자 "사람"이라 했다. 그는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50년'을 한 장씩 넘기면서 말했다. "1960~70년대에 청소년들이 기술을 배운다는 것은 가난을 벗어나 시야와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졸업생들이 성공해 센터를 찾아올 때 정말 기쁩니다. 미장원 의자에 관해선 최고인 회사 사장도 저희 동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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