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近園을 만나고 오는 길

    입력 : 2017.09.29 03:15

    화가·수필가 김용준 50주기… 옛집 있던 성북동서 전시회
    그의 글만큼만 감동 줬어도 지금의 인문학 위기 없었을 것

    김태익 논설위원
    김태익 논설위원

    개인적으로 '예술가의 우정'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서양화가 수화(樹話) 김환기와 화가이자 수필가인 근원(近園) 김용준이 서울 성북동 집을 사고팔 때 이야기다. 1944년 근원은 애지중지 가꾼 집 노시산방(老枾山房)을 후배 수화에게 넘기고 의정부에 이사 간다. 뜰의 감나무가 아름다운 집이었다. 그런데 이듬해 해방이 되고부터 성북동 집값이 오르기 시작한다. 수화는 이게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는 어느 날 근원을 만나 "대단히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러곤 그 후 근원을 볼 때마다 돈을 건네고 자기가 사랑하는 골동품도 나눠주고 한다. 다음은 근원이 쓴 글에 나오는 말이다.

    '많은 친구를 사귀어보고 여러 가지 일을 같이 해봤으나 의리나 우정이나 사교란 것이 어느 것 하나 이욕(利慾) 앞에서 배신당해 보지 않은 것이 없다.' 근원은 '노시산방이란 한 덩어리 환영(幻影)을 인연 삼아 한 사람의 예술가를 얻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했다.

    선배에게 산 집값이 오르자 그게 미안해 뭘 하나라도 주고 싶어 하는 수화나 내 손 떠난 집에 미련 두지 않고 오히려 후배 마음에 감격하는 근원의 탈속한 경지가 부럽고 그리웠다.

    엊그제 성북동에서 근원의 자취를 만났다. 그 노시산방 터 근처에 최근 생긴 문화 공간 17717에서다. 몇해 전 '근원 김용준 전집'을 낸 출판사 열화당이 근원 50주기를 맞아 영국 작가 존 버거와 근원의 그림·글을 모아 10월 15일까지 '매화와 붓꽃' 전시회를 열고 있다.

    러시아 한인 화가 변월룡이 1953년에 그린 월북 화가 근원 김용준의 초상화.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댁에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 가난한 살림에도 때로는 운치가 있는 법입디다.' 이렇게 시작하는 근원의 글은 매화에 관한 고금(古今)의 수많은 글 가운데서도 절창이다. 전시장에 근원의 매화 그림이 한 점 걸려 있다. 화폭에 이렇게 쓰여 있다. '매화와 더불어 벗이 되고 싶어 매화 몇 가지 그렸으나 속된 화사(�師)의 화법을 면치 못하였구나.' 이게 근원이었다. 그는 매화와 고전(古典)과 추사(秋史) 글씨를 벗 삼으며 정신의 고고함을 추구했으나 향한 곳은 늘 바깥보다는 자신의 내면이었다.

    전시장에는 근원이 1930~1940년대 그린 책들 표지가 실물로 나와 있다. 문장(文章), 화사집, 무서록, 청록집, 지용시선, 무녀도, 임꺽정…. 한국 현대문학사에 빛나는 문학 작품들이 근원을 만나 품격을 더했다.

    근원이 살던 무렵 성북동은 '꿩이나 늑대가 가끔 내려오고' 수백년 된 소나무·전나무 사이로 맑은 개울이 흘렀다. 이곳에서 근원은 글을 썼다. 그의 글들이 '근원 수필'이란 책으로 묶여 나오자 항간에 "수필은 근원으로 끝이다"는 말이 나돌았다고 한다. 없는 살림에 두꺼비 모양 연적(硯滴)을 샀다가 아내에게 타박 맞은 얘기, "우는 듯 웃는 듯, 춤추는 듯 성낸 듯, 세찬 듯 부드러운 듯한" 추사 글씨에 대한 감상, "위대한 예술은 완성된 인격의 반영"이라는 깨우침…. 근원의 글들은 고아 하고 기품 있는 한 인간 정신의 흔적이다. 그가 이런 글들을 쓸 때 나이가 마흔 안팎이란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오늘날 인문학자들이 이만큼 유려하고 감동 있는 글을 쓴다면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할 이유가 있을까 싶다.

    근원은 "남에게 해는 끼치지 않을 테니 나를 자유스럽게만 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월북 후 그의 삶은 이런 기원을 배반했다. 근원은 북에서 김일성 교시에 따른 조선화(朝鮮畵) 기틀을 세우는 일을 하다 1967년 자살을 한다. 이유가 어처구니없었다. 김일성 초상화가 실린 신문을 집 앞에 내버렸던 것이 밝혀져 추궁당할 것이 두려워 벌인 일이었다(조영복 '월북예술가: 오래 잊혀진 그들'). 역사는 간계를 부리다 못해 때론 잔인하다. 누구보다 맑고 고고했던 근원의 비극적 죽음은 근현대 예술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가 비록 조촐하긴 하지만 그가 찾아갔던 북한에는 50주기 맞아 이만한 추모의 자리라도 있었을까. 근원을 만나고 오는 길, 성북동 길가 집들 담장 안에선 감나무가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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