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미스터 에브리싱' 왕자, 여성 운전까지 許하다

    입력 : 2017.09.28 03:08 | 수정 : 2017.09.28 08:22

    [32세 빈살만 왕자, 잇단 파격 조치로 개혁 아이콘 등극]

    비키니 리조트 건설 허용하고 잡스·저커버그 존경하는 신세대
    왕위계승 1순위 사촌 내쫓고 장관할 때 예멘 공습하는 등 정치적으론 강경한 면모

    사우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
    사우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살만 빈 압둘아지즈(82)가 26일(현지 시각) "여성의 운전을 허용한다"는 칙령을 내렸다고 사우디 국영통신(SPA)이 보도했다. 이번 조치로 사우디는 '세계에서 여성 운전을 금지한 유일한 국가'라는 오명을 벗게 됐다.

    사우디에서 여성이 운전대를 잡고 '이슬람 성지(聖地)' 메카 도로를 달리는 모습은 내년 6월 말쯤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사우디 정부는 이날 "칙령에 따라 한 달 내로 특별 위원회를 구성해 남성과 동일하게 여성도 운전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교통법규 조항을 마련할 것"이라며 "이 법규는 내년 6월 24일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우디에 여성 운전을 금지하는 명문 법규는 없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는 여성에게는 운전면허증을 발급하지 않는 방법으로 여성 운전을 막아왔다. 이에 따라 외국인 여성도 사우디에선 운전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사우디에 거주하는 모든 여성은 따로 운전기사를 고용하거나 남편 등 친인척 남성이 모는 차를 타야만 했다. 어기면 벌금형에 처해졌다.

    그동안 사우디 국내외 인권단체들은 "여성 운전 금지는 사우디 여성의 사회 활동을 제약하고, 성차별 인식을 확산시킨다"며 악습 철폐를 요구해왔다. 한 사우디 여성운동가는 남장(男裝)을 하고 운전하다 체포돼 70여일간 구금되기도 했다. 사우디 정부는 국내외 비판 여론을 감안해 2015년 사상 처음으로 여성 참정권을 허용하는 등의 조치를 했지만, 이슬람 강경 보수층의 반발을 의식해 여성 운전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사우디 실세 왕자 무함마드 빈살만의 정책 정리 표

    그랬던 사우디 정부가 이번에 입장을 바꾼 배경에는 '신세대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32)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노쇠한 아버지 살만 국왕을 대신해 국정을 총괄하고 있는 그는 '미스터 에브리싱'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칙령 서명도 아버지의 손을 빌린 빈살만의 '작품'이란 말이 나온다. 미 CNN은 "그는 사우디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이끄는 선봉장"이라고 했다. 한편 세계적 갑부로 유명한 알왈리드 빈탈랄 사우디 왕자(킹덤홀딩스 회장)는 이날 트위터에 사우디 여성 운전 허용 소식을 보도한 뉴욕타임스 기사를 리트윗(재전송)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글을 남겼다.

    빈살만 왕세자는 과거에 없던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다. 작년 4월에는 직접 연단에 올라 국정 연설을 하면서 중장기 사회·경제 개혁 프로그램인 '비전 2030'을 선포했다. 두 달 뒤인 6월에는 미국 실리콘밸리로 날아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립자를 면담하면서 "탈(脫)석유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올 8월에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의 땅인 홍해 연안에 음주와 비키니 착용이 가능한 대규모 무비자 관광 휴양지를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도 발표했다. 그는 이번 여성 운전 허용에 이어 여성이 외출할 때 남성 보호자와 동행하도록 한 제도도 철폐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그는 '사우디 개혁 아이콘'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정치적으로는 호전적이며 냉혹한 면모를 보여왔다. 빈살만 왕세자는 국방장관에 임명된 지 두 달 만인 2015년 3월 군 주요 참모들과 상의도 없이 예멘의 시아파 반군에 대한 전투기 공습 명령을 내렸다. 민간인 사망자가 속출했다. 지난 6월에는 중동 국가들의 카타르 국교 단교(斷交)를 주도하기도 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그는 시리아와 예멘에서 대리(代理) 전쟁을 일으켜 아랍 지역의 안보를 뒤흔드는 정치적 도박꾼"이라고 했다. 그가 왕세자에 오른 과정도 극적이었다. 그는 지난 6월 말 군대를 동원해 당시 왕위 계승 1순위이던 사촌형 무함마드 빈나예프(58) 왕자를 가택 연금하고 '왕세자' 자리를 빼앗았다. 이어 빈나예프의 측근들을 한직으로 몰아냈다. '왕자의 난'에서 최종 승리를 거둔 것이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살만 국왕과 그의 세 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왕립 킹사우드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졸업 뒤 민간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뒤 스물네 살이던 2009년 당시 리야드 주지사를 맡고 있던 아버지의 자문역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리야드 경쟁력 위원회 사무총장, 킹 압둘아지즈 재단 이사회 의장,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 회장, 국방장관 등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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