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아이유, 밤에는 방탄소년단."
국내 최대 디지털 음원 서비스인 '멜론'의 실시간 차트에서 요즘 벌어지는 일이다. 1시간마다 이용자 수를 반영해 순위가 갱신되는 이 차트는 오전 8시부터 0시까지는 아이유의 신곡 '가을아침'이 압도적 1위다. 하지만 0시부터 오전 7시까지는 7인조 보이 그룹 '방탄소년단'의 신곡 '디엔에이(D.N.A)'가 1위로 올라선다. 지난 18일 방탄소년단이 컴백한 후 10일간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멜론 관계자는 "아이유의 곡은 10~50대까지 고루 듣는 반면, 방탄소년단은 10~20대 여성 이용자 비중이 높다"며 "팬클럽 회원들이 24시간 '스밍'(스트리밍의 준말·디지털 음원 반복 재생을 뜻하는 은어)을 하기 때문에 이용자가 적어지는 밤 시간대에 1위로 올라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 오빠 1위 만들려면 숨 쉬듯이 '스밍'해야"
"음원 사이트 차트 개혁 후 첫 컴백,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들이 '스밍'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이 새 앨범을 발매하기 전날인 지난 17일 팬클럽 홈페이지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멜론 차트 1위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당) 이용자 수 최소 8만명이 나와야 한다"며 "1위 해야 대중이 한 번이라도 더 들어보니 숨 쉬듯이 '스밍'하자"고 했다. 이 글은 트위터에서만 1600여 회 공유됐다. '스밍'은 이제 아이돌 가수들이 새 음반을 내면 팬클럽 회원들이 하는 필수 코스가 됐다. 열성 팬들은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 명의까지 빌려 멜론 등 음원사이트에 가입해 여러 개의 유령 아이디를 만든다. 그리고 스마트폰 공(空)기계를 사들인 뒤 멜론에 접속해 응원하는 가수의 신곡을 24시간 재생한다. 음원 서비스별로 집계 방식이 달라서 서비스별 맞춤형 재생 목록을 만들어 공유한다. 보이 그룹 '워너원'의 경우 팬클럽이 '스밍하는 법'이라는 쪽지까지 만들어 쇼케이스 현장에서 배포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 팬클럽 4년 차 회원 이모(20)씨는 "새 회원이 가입하면 '스밍' 목록 만드는 법은 물론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 순위 띄우기나 유튜브의 뮤직비디오 '좋아요' 및 공유 방법 등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아이돌 기획사도 이에 맞춰 신곡을 밤 0시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일반인 이용자가 적은 심야에는 팬들이 1위를 만들기 더 쉽기 때문이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자정에 1위가 되면 일반인 이용자들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는 아침 시간대까지 1위가 이어져서 홍보에 유리하다"고 했다.
◇뛰는 멜론 위에 나는 팬 있다
아이돌 팬클럽의 '스밍'은 사실상 차트 조작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월 음원 차트 집계 방식 개선안을 내놨다. 0시에 발매된 음원은 그날 오후 1시까지 차트에 반영되지 않도록 막은 것이다. 또 멜론 등은 유령 아이디로 의심되는 계정을 주기적으로 조사해 삭제하는 등 '스밍' 방지 대책을 실행 중이다. 하지만 아이돌 팬클럽은 여전히 '스밍'을 조직적으로 실행 중이다. 방탄소년단의 시간당 음원 재생 수가 24시간 내내 큰 변화 없이 이어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팬클럽 회원들은 '차트 개혁안 뚫고 스밍하는 법' 등을 공유하면서 '1위 만들기'를 하고, 각 팬클럽끼리 신곡이 나오면 서로 스밍을 도와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실시간 차트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다. 지금처럼 매시간 순위와 이용자 수까지 공개하는 건 팬들의 경쟁심을 자극하는 구조다. 빌보드처럼 일주일 단위로 갱신되는 차트나, 공신력 있는 척도로 운용되는 통합 차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 일부 아이돌 팬클럽 사이에서도 '스밍'이 결국 디지털 음원 사이트의 매출만 올려줄 뿐이기 때문에 모든 팬들이 단결해서 이를 관둬야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