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족은 수세식 화장실 썼다

    입력 : 2017.09.27 03:05 | 수정 : 2017.09.27 07:47

    경주 '월지' 발굴 현장 공개… 배수 시설 등 함께 나온 건 처음

    퓨전 사극처럼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한다면 조선보다는 통일신라로 가는 게 적응하기 쉽겠다. 비데까진 없지만 수세식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8세기 무렵 만들어진 한반도 현존 최고(最古) 수세식 화장실이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옛 이름 안압지)에서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는 2007년부터 발굴을 시작한 동궁과 월지 동편 지역에서 찾아낸 화장실 유구(遺構·건물의 자취)를 26일 공개했다. 국내 고대 화장실 유적 중에 화장실 건물 터와 변기, 오물 배수 시설이 모두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궁은 신라 태자를 위한 궁궐로 679년(문무왕 19년)에 지었다.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시대 수세식 화장실. 발판으로 놓은 판석 사이로 타원형의 화강암 변기가 보인다. 변기 아래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하수 시설이 있다.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시대 수세식 화장실. 발판으로 놓은 판석 사이로 타원형의 화강암 변기가 보인다. 변기 아래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하수 시설이 있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변기는 화강암을 타원형으로 깎고 안을 둥그렇게 파내 만들었다. 아래쪽에는 지름이 12~13㎝가량인 구멍을 뚫었다. 변기 구멍은 10~15도가량 경사진 하수도로 이어진다. 수도 시설 흔적이 없는 걸로 봐서 화장실 옆에 둔 항아리에서 물을 떠 변기에 부어 오물을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화장실 터는 약 24.5㎡(7.4평). 박윤정 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관은 "현재 하수도 마지막 부분이 동해남부선 철길 아래 깔려 있다"며 "오물을 월지로 곧장 흘려보내지는 않았을 테니 지금의 정화조 비슷한 시설이 철길 아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변기 위로는 쪼그려 앉을 수 있도록 화강암을 깎아 만든 발판(길이 175㎝, 너비 60㎝)이 한 쌍 올려져 있는데, 다른 곳에서 쓰였던 변기를 발판으로 재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국사 석판 변기와 똑 닮은 형태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화장실 유적은 지난 2005년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됐다. 7세기 백제 무왕 시절 것으로 물을 사용한 흔적은 있었으나 이번 신라 유적처럼 근대적 형태와 비슷한 변기는 없었다.

    화장실 북동쪽에서는 63평 규모의 동궁 출입문 터가 발견됐다. 경주문화재연구소 측은 "신라 왕궁 터에서 출입문 흔적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며 "이곳에서 발견된 적심(積心·초석 밑 다짐돌)은 지름이 2m가 넘어 월성(月城)에서 발견된 것보다도 크다"고 말했다. 통일 이후 동궁을 지었던 만큼 당시 신라의 국력 신장을 짐작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동궁 터에서는 통일 이전 삼국시대에 쓰였던 대형 배수로를 폐기하면서 소 골반뼈와 그 위에 토기를 올린 흔적, 통일신라 말기 동궁 우물을 막으면서 사슴 한 마리를 집어넣고 그 위에 돌을 올렸던 흔적도 확인됐다. 배수로, 우물 등 물과 관련해 신라인의 풍습을 연구할 때 도움을 줄 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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