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박근혜의 '죽어서 사는 길'

조선일보
  • 김대중 고문
    입력 2017.09.26 03:17

    朴 전 대통령 자신으로 인해 망가진 보수 정치세력을 통합하는 게 소생하는 길
    "모든 것은 나의 정치적 罪, 나라 위해 나를 밟고 가라" 결단할 때 부활할 기회 있다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의 심경은 착잡하다 못해 무력감마저 든다. 박 전 대통령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그에 반대해서 '촛불'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도 그의 초췌한 형상이 결코 보기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보수층 사람들은 문재인 정권의 안보 우왕좌왕과 좌편향 폭주가 심해질수록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동시에 원망의 감정을 느낄 것이다.

    문제는 박 전 대통령이 아직도 어떤 미망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그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그는 아직 자신이 무고하고 아직도 살아날 수 있으며 아직도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 만기는 오는 10월 16일이다. 그 안에 1심 재판이 끝나지 않으면 박 전 대통령은 일단 풀려난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다. 불구속 상태가 되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주변의 관심과 지지자들의 기세가 올라 탄핵 문제로 갈라진 세력 간의 갈등이 또다시 점화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박 전 대통령 변호인 측도 재판의 불씨를 계속 살려 재판을 끌고 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이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게다가 일부 극단적 친박 인사들이 '박근혜 석방'을 계속 외쳐대는 것도 박 측을 고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 정권 측에서도 재판이 빨리 종결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무죄가 되면 탄핵의 정당성 문제가 다시 제기될 것이다. 유죄로 떨어져도 다시금 소용돌이가 가라앉는 데 상당한 정치적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재판이 빨리 끝나 친박·반박 세력이 갈등을 봉합하는 시간을 벌 수 있는 사태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야권 통합으로 이어져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압박하는 상황은 더더욱 그렇다.

    이런 속셈대로라면 정치권은 상당 기간 '박근혜 사태'를 벗어나기 어려우며 그것은 곧 야권의 지리멸렬로 귀결될 것이다. 최근 만난 한 야당 중진 의원은 이렇게 토로했다. "문재인 정권의 폭주를 저지하는 길은 보수 야권 통합인데 박근혜 문제가 그 길을 가로막고 있다. 통합이나 연대의 필요성에 동조하는 의원들도 일단 박근혜 재판이 결론이 난 뒤 운신이 자유로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재판이 해를 넘겨 끌 것 같고 내년 6월 지방선거는 다가오는데 서울시장 등 주요 선거에서 보수가 단합의 힘을 보여주지 못하면 문재인 정권은 더욱 기고만장하게 갈 것이다." 야권 인사들은 문 정권의 독주에 브레이크가 걸릴 상황은 첫째 여론조사상 문 지지도가 50% 이하로 떨어질 때, 둘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할 때, 셋째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 적어도 서울에서 야권이 승리할 때라고 말했다. 핵심은 두 정당의 통합이다.

    여기에 박 전 대통령의 결단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가 있고 그가 소생할 기회가 있다. 자신이 모든 책임을 안고 가면서 보수의 대통합을 이끌어 내는 길이다. 박 전 대통령의 권력적, 실정법적 복귀는 어느 모로도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효용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 수 있다. 자신을 던지는 것이다. 보수층 사람들은 박 전 대통령이 예전의 총명한 모습, 단호한 여장부 모습으로 되돌아와 그의 마지막 정치 무대에 오르기를 기대한다. 이 마당에 내가 지시한 적이 없다느니, 몰랐다느니 하는 변(辨)을 반복하는 것은 한때 품위 있었던 '대통령의 모습'을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그의 초췌한 모습에 침을 뱉는 독기 어린 정치적 반대자의 태도가 무례해 보일수록 그의 '정치적 부활'이 절실한 이유다. 그것은 자신을 던져 보수의 자성과 새 출발을 촉발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문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나는 한국 정치의 참신한 변모를 위해 출발했으나 나 자신에 얽힌 트라우마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오늘날 '최순실 사태'의 오명을 남기고 말았다. 그것이 누구의 농간이었건 모든 것은 나의 불찰이요 나의 부덕이요 나의 정치적 죄임을 깨달았다. 나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 나로 인해 영어의 몸이 된 사람, 나로 인해 정치적으로 몰락한 사람들을 대신해 내가 그 업(業)을 안고 가겠다. 그것이 평생 배신을 인간 최악의 범죄로 여기며 살아온 내가 지지자들을 배신하지 않는 길임을 이제야 절실히 느낀다. 모든 사람 풀어주기 바란다."

    그리고 정치적 메시지로 자신의 역할을 마감한다.―"보수가 나로 인해 갈리고 싸우는 것은 나로서는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이고 아픔이다. 이제 나를 딛고 통합의 길로 나서야 한다. 나를 지지했던 사람, 반대했던 사람, 더 이상 싸우지 않고 나라의 안보를 위해, 나라의 발전을 위해 대타협하고 나를 밟고 넘어갔으면 한다." 그것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죽어서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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