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곰' '호감 가는 동네 아재' 되다

    입력 : 2017.09.26 03:04

    GS칼텍스 '마음톡톡 교실힐링'

    정서적 어려움 가진 청소년 돕는 집단 예술심리치유 프로그램
    연극·미술·음악 등 치료사 참여, 단기간 결과 보이지 않아도 끝없는 피드백으로 효과 높여

    '학교 가기 싫다'. 영호(가명·14)는 아침에 눈뜰 때마다 생각했다. 매번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지만, 학교에선 늘 혼자였다. 소심하고 방어적인 성격 탓에 친구에게 먼저 다가갈 수도, 다가오는 친구를 맞기도 힘들었다. 어느 날, 영호네 반에서 연극, 음악, 미술 등 예술심리치유 프로그램이란 걸 한다고 했다. 어색한 친구들과 한 조가 돼 준비한 공연. 영호는 자신의 성격과 정반대인 인물 역할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처음 알게 됐다.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고, 타인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이뿐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도 거부하지 않는 친구들을 보게 됐다. 이후 영호는 용기를 갖기 시작했다.

    심리치유 프로그램 3개월이 끝난 지금, 영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쉬는 시간마다 홀로 공부만 하는 대신, 옆자리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고 고민거리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수업 초 그가 자신에게 붙인 별명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곰'. 마지막 시간, 그가 붙인 새 별명은 '호감 가는 동네 아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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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톡톡 교실힐링에 참가한 학생들이 함께 공연 무대에 올랐다. / GS칼텍스 제공
    ◇마음의 상처 예술로 어루만지다

    영호를 바꾼 건 '마음톡톡 교실힐링'(이하 교실힐링)이다. 교실힐링은 일반 중학교 1학년생을 대상으로 하는 집단 예술심리치유 프로그램이다. 총 12회기 동안 신청 학교의 1학년 전체가 일주일에 한 번, 정규 수업 시간에 약 1시간 30분 동안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한 반에 8~10명씩 그룹을 이루면, 연극·미술·음악 등 예술 치료사 6명이 2명씩 각 그룹에 들어가 활동한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교실힐링을 거쳐 간 학생은 총 35개 학교 3254명(올해 계획 인원 포함).

    원래 이 프로그램은 2013년 GS칼텍스가 정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집단 예술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마음톡톡' 사업에서 시작됐다. 사업의 효과성을 경험한 GS칼텍스는 2014년부터 대상을 확대, 부적응 아동뿐 아니라 일반 청소년을 위한 관계 형성 프로그램 '교실힐링'을 개발했다.

    박필규 GS칼텍스 CSR추진팀 팀장은 "학업 스트레스와 불안정한 또래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요즘 청소년들에게 심리치유를 통한 예방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서 "한 아이뿐 아니라 반 전체, 학교 전체가 변해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해 치료사가 학교로 찾아가는 교실힐링을 선보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4년 첫해엔 3개 학교에서 시범 활동을 시작, 이듬해 2월 교육부와 GS칼텍스가 '학교 내 예술치유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대상 학교가 24곳으로 대폭 늘어났다. 2016년에는 서울과 경기 4개 중학교에서, 올해도 서울 지역 총 4개 중학교에서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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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료사와 참가 아이들이 함께 둘러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위 사진). 자신의 심리상태를 표현한 참가 학생들의 작품(아래 사진).
    ◇효과 바로 나타나지 않는 치유 활동… 학교와 학부모 설득 중요

    교실힐링이 처음부터 좋은 결과를 얻은 건 아니다. 가장 극복하기 힘들었던 건 학교와 학부모를 설득하는 일. 학교 입장에선 수업 시간을 90분이나 비워야 하는 데다, 학부모들은 치유에 거부감을 보였다.

    "교실힐링은 일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치유 프로그램이라 프로그램 초기에 학교와 학부모들의 거부감이 있었어요. 심리 치료의 부정적 인식 때문이었죠."(이현상 GS칼텍스 CSR 추진팀 교실힐링 담당자)

    이현상 담당자는 "치료사들과 매회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피드백 시간을 가지고 다음 수업에 반영하며, 교실힐링을 시작하기 전 담임교사에게 아이들 정보를 충분히 얻고 진행 사항을 논의하는 등 소통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치유 프로그램 특성상 단시간에 임팩트가 나지 않는 점도 넘어야 할 산이었다. 식비 지원 같은 긴급 구호는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반면, 교육 사업은 효과가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이 담당자는 "실제 부적응 학생의 변화 결과에서 정성적 평가는 평이했지만 정량적 평가가 오히려 더 안 좋게 나오기도 했다"면서 "단기간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원인을 분석해 다음 회기에 반영했다"고 이야기했다.

    ◇끊임없는 피드백과 연구로 전문성 갖춰

    자신과 닮은 동물 정하기, 힘들었던 상황을 그림이나 몸짓으로 표현하기…. 이 같은 심리치유 프로그램의 핵심은 사실 수준 높은 치료사와 탄탄한 커리큘럼이 8할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실힐링의 경우, GS칼텍스가 예술심리 치료사들의 '자기 발전'을 위한 교육과 워크숍 등을 지원해 전문성을 길러준다. GS칼텍스 교육을 받은 치료사만 60여 명이나 된다. 미술 치료 교사로 활동 중인 김지영씨는 "교실힐링에서 치료사들은 다른 분야를 통합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며 "미술 치료사는 연극 치료, 음악 치료사는 미술 치료를 관련 교수들에게 배울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했다. 김씨는 "최근 연극치료를 오래 연구한 이효원 용인대 뮤지컬연극학과 교수님에게 교육 받았고, 심지어 교수님도 치료사로 교실힐링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GS칼텍스는 프로그램의 체계적 발전을 위해 효과성 평가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학생 개인의 인식 수준의 변화를 측정하는 '심리변화 진단 도구'를 자체 개발했고, 지난해엔 외부 기관인 '사이람'과 협력해 사회성과 또래 관계 변화를 측정하기 위한 '교우 관계 진단 도구'도 도입했다. 치료사들은 매번 지난 회기의 보완점을 조사해 프로그램에 반영하고, 학기 종료 후에는 평가 교수진과 치료사, GS칼텍스 담당자들이 1박 2일 워크숍을 가진 뒤, 종합 보고서를 발간해 교실힐링의 임팩트를 통합적으로 진단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올해 1학기(3~8월) 대상 학교의 심리 변화 진단 결과,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 전체 사회적 역량이 향상됐으며 관계 소외 위험군(관계 부적응) 비율이 전체의 38.6%에서 28.8%로 9.8%포인트나 줄어들었다. 프로그램 미참가 학교의 경우 시간이 흐를수록 관계 소외 위험군 비율이 늘어나는 것과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GS칼텍스는 올해 힐링학교가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으며 교실힐링을 비롯, 초·중학교 심리 정서 위기 학생 치유 프로그램인 '위센터치유', 아동 대상 2박 3일 집중 집단 예술 치유 활동인 '치유캠프' 등의 마음톡톡 사업에도 지속적으로 힘을 쏟을 예정이다.

    박필규 팀장은 "GS칼텍스의 마음톡톡 사업은 핀란드의 키바코울루(Kiva Koulu·학교 폭력 예방 및 심리 치유 통합 프로그램)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서 "교육부, 교육청과 함께 마음톡톡 활동의 혜택이 많은 아동·청소년에게 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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