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박근혜 黜黨? 지금은 다 죽은 권력이고 가장 참혹한 상태인데…"

    입력 : 2017.09.25 03:05

    [이회창 前 한나라당 총재]

    "YS와의 만남 '운명의 갈림길'… 정치 인생은 내게 큰 행운
    보통 인생은 카드 한 장 받는데 나는 한 장 더 받았던 셈"

    "文 대통령은 미국에 가선 미국 듣기 좋은 소리 하고,
    중국에는 중국 듣기 좋게… 상대 면전에 분명히 말해야"

    "책이 불티나게 팔렸으면 바빴을 텐데, 외출도 안 하고 만나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 인터뷰가 회고록 출간 뒤의 마지막 과업이군요(웃음)."

    한 달 전 회고록을 낸 이회창(82) 전 한나라당 총재와의 대담은 3시간 넘게 진행됐다. 그는 질문마다 꼼꼼하게 답변했다. 분량이 넘쳐 현 상황과 연결되는 대목부터 기록할까 한다.

    이회창 전 총재는“나도‘제왕적’이라고 비판받았지만 사전에 여러 사람 의견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회창 전 총재는“나도‘제왕적’이라고 비판받았지만 사전에 여러 사람 의견을 들었다”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1.6% 차로 패배했습니다. 보수에서 진보로 처음 정권이 넘어가는 계기가 됐지요.

    "제가 부족한 탓이었습니다. 선거는 후보의 자질보다 이미지와 퍼포먼스가 중요합니다. 그때 저는 대중 설득력이 약했고, 상대가 짜놓은 '귀족과 서민'의 프레임을 깨지 못했어요."

    ―당시 JP(김종필)를 끌어안으라는 참모들의 조언을 듣지 않았습니다. 'JP의 충청표'를 가져왔으면 이기지 않았을까요?

    "그 제안을 오래 숙고했습니다. DJP 연합은 '대통령 당선되고 1년 뒤 내각책임제'라는 약속으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DJ가 집권하자 약속이 깨졌습니다. 애초 DJ는 내각제를 할 생각이 없었고, 마찬가지로 JP도 그 약속이 지켜질 걸로 믿지 않았을 겁니다. 다만 그렇게 연합을 안 할 수 없는 처지였지요. 제가 JP와 손잡는 걸 거부한 것은 '내각제' 약속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속일 수는 없었어요. 또 장기적인 정치 발전을 위해 JP와 연합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봤습니다."

    ―당시 김현철 구속 등으로 YS 정권의 지지율은 바닥이었지요. 선거 막판에 '김영삼 인형'을 불태우는 퍼포먼스가 벌어졌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보수 민심이 등을 돌렸지요?

    "포항 지역 대선 필승 대회에서 YS 피켓을 밟고 인형을 불태우는 짓은 제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나중에 관련자를 야단쳤습니다. YS가 저에 대해 싫은 소리를 할 때마다 꼭 이를 언급했습니다."

    ―그 뒤 인기 없는 YS에게 '탈당(脫黨)'까지 요구했지요?

    "대선 국면에서 DJ 비자금 자료가 입수됐습니다. 덮어둘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지요. 그 뒤 당대표로서 마지막 정기국회 연설을 하고 있을 때 TV 자막으로 '속보(速報)'가 떴습니다. YS가 검찰총장에게 '비자금 수사 중단 지시'를 했다는 겁니다. 대놓고 뺨을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대통령이 같은 당 후보를 깎아내리고 해코지할 바에야 차라리 탈당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YS의 지지율이 떨어져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극도의 갈등 관계가 표출된 것인데, 지나고 나니 좀 더 관용을 보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작년에 새누리당 의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동조하고 탈당한 상황과 오버랩 됩니다.

    "비박계 의원들이 '배신자' 소리를 듣고 있는데, 국가 리더십 표류와 권력 공백을 막기 위해 그렇게 결정한 면이 있을 겁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박 전 대통령은 사실상 국정 운영이 어려웠습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하고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내려왔으면 지금과 같은 보수 분열은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가 판단을 그르치고 이 지경까지 몰고 온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본인은 물론이고 보수 진영에 심한 상처를 줬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책임은 다 압니다. 제 질문은 당시 새누리당의 태도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겁니다.

    "새누리당 지도부에도 그 못지않게 책임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저러니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변명은 옳지 않습니다. 당 지도부는 청와대 앞에서 소통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이라도 했어야지요. 그렇게 했으면 국민이 새누리당을 판단하는데 결코 야박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난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을 편들었던 자유한국당이 얼마 전 '탈당 권유' 카드를 꺼냈는데요?

    "박 전 대통령을 제명함으로써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인데,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살아있는 권력일 때 그렇게 했어야지. 지금은 다 죽은 권력이고 수감돼서 가장 참혹한 상태인데, 그렇게 한다는 것은…."

    ―비겁한 것 같습니까?

    "비겁하죠. 탄핵에 동조한 비박계에 대해 '배신'이라고 하고는 지금에 와서 이러는 것은, 박 전 대통령이 힘이 셀 때면 모르겠는데…. 제가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게 아닙니다."

    ―당 지지율이 정체되니까 그렇게라도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이겠지요.

    "과거 역사를 털어내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을 제명하고 안 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요. 그런다고 자유한국당의 지지율과 성가가 올라갈까요. 박근혜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보겠습니까. 정정당당하게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작년 총선 패배부터 박 전 대통령과 지도부의 공과(功過)와 문제점을 분명하게 정리하는 작업부터 해야 합니다."

    ―'바른 보수'를 하겠다는 바른정당은 존재감 없이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 존립이 올해를 넘기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그쪽도 큰일 났더군요. 스무 명밖에 안 되는 소속 의원들이 같이 모여 며칠 밤샘 토론을 해서라도 공감대를 찾아야지, 이해타산으로 서로 손가락질하면 길이 없습니다. 당의 중심을 잡은 뒤 보수 세력끼리 결합해야 한다고 봅니다. 합칠 때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신뢰가 필요합니다."

    ―보수 진영은 풀기 어려운 '박근혜 문제'에 발목이 묶여 있는 셈입니다. 애초 박 전 대통령을 정계에 입문시킨 인연이 있지요?

    "1997년 대선 전에 그가 사람을 보내와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해와 만났습니다. 자신의 소신이나 고집을 관철하는 기질을 좋게 봤습니다. 이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려는 권력 의지는 강했으나 좋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권력 의지가 약했던 겁니다."

    ―두 분은 강한 고집과 독단에서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나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볼지도 모르죠. 총재 시절 나도 '제왕적' '독단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여러 사람 의견을 다 들어봅니다. 귀가 얇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지요. 결정이 내려지면 그때부터는 누구도 못 꺾는 '이회창 고집'이 됩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아직 얼마 안 돼서 평가하기 이르지만 홍보에 너무 치중하는 것 같다"고 말씀했지요?

    "대통령이 말을 자꾸 바꾸는 건 좋지 않습니다. 인사(人事) 기준에 대해 그렇고, 사드 배치 문제도 오락가락하다가 마침내 '배치 완료'를 하고서는 또다시 '임시 배치'라며 꼬리표를 달았습니다. 대통령의 말이 그냥 해보는 소리로 국민에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됩니다. '탈(脫)원전' 문제에서도 말이 조금씩 바뀝니다. 장기적인 국가 정책을 너무 즉흥적으로 대한다는 인상을 주지요."

    ―대통령도 자신의 지지 세력에 대해 신경 쓸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정치에서 포퓰리즘은 불가피하지만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대북·대미·대중 관계에서도 확고한 철학과 결기가 있었으면 합니다."

    ―중국을 지렛대로 해서 북한 문제를 대화와 교류로 풀겠다는 문 대통령의 철학이야 있지 않겠습니까. 다만 국제 현실에서 안 통해서 고립되는 것이겠지요.

    "문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는 미국 듣기 좋은 소리, 중국에는 중국 듣기 좋은 소리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까, 보복하지 않을까, 눈치를 보게 되면 중국의 지배하에 들어갑니다. 대통령은 상대 면전에서 분명하게 말하는 결기가 있어야 합니다. 국가 안보와 국민 생존을 위해 '북핵 폐기'가 우리 과제라고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최악의 한반도 위기 국면이지만, 결국은 미·북 간에 '북핵의 현 단계 동결'로 현실적 타협이 이뤄질 것으로 외교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북핵 동결'이란 북한이 상황이 바뀌면 다시 핵무기에 손댈 수 있는 겁니다. 북핵의 완전 폐기를 주장해야 합니다. 이 시점에 우리 대통령이 먼저 대화와 협상을 얘기하는 것이나 800만달러 지원하겠다는 발표는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회고록 얘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YS와의 만남을 '운명의 갈림길'로 표현했더군요.

    "그 전까지 법관을 천직(天職)으로 생각했는데, 1993년 초 초대 감사원장 제의를 받으면서 전혀 다른 인생이 열렸던 겁니다. YS는 감사원장직을 제의할 때는 '독립된 제 4부(府)'처럼 하라고 했지만, 막상 맡고 나자 '자기편 사람'이 돼주길 기대했습니다."

    ―보스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런 기대를 하지 않겠습니까?

    "고위직에 있는 YS 측 인사에 대해 감찰을 하니 불만스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럴 수밖에 없다고 설득하면 어쨌든 받아줬습니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임금 신하 부모 자식이 각자 역할을 잘 하는 것)'라는 말처럼 제가 맡은 역할을 잘 하는 게 그를 돕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다시 총리로 발탁했으니, YS가 좋게 평가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총리 시절 통일안보정책회의 보고 문제로 두 분이 크게 충돌했지요. 안 좋게 헤어졌는데, YS가 총선을 앞두고 '전국구 1번'을 먼저 제안했지요?

    "통 큰 분입니다. 여러 통로로 제의가 왔지만 그를 만나면 넘어갈 수밖에 없으니 아예 안 만나려고 했어요. 하지만 저를 감사원장과 총리로 시켜줬고, 서로 결별했을 때 YS가 정치적 타격을 더 많이 입었습니다. 고민 끝에 선거대책위원장을 수락했습니다."

    ―정치판에 들어온 것을 스스로는 어떻게 봅니까?

    "정치 인생은 신(神)이 제게 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인생에서 카드 한 장을 받습니다. 저는 한 장을 더 받았던 셈입니다. 정치에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정치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회한(悔恨)으로 남습니까?

    "심정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것은 저를 도왔던 사람들을 불가피하게 공천에서 내쳐야 했던 경우입니다. 고(故) 김윤환 의원 같은 분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련한 아픔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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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어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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