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까지 들어와 찰칵… 내 가난이 구경거리인가요?"

    입력 : 2017.09.22 03:05 | 수정 : 2017.09.22 18:47

    [창신동 등 서울 쪽방촌 주민들 사생활 침해 고통 호소]

    관광지처럼 동네 돌며 무단 촬영… "찍지 마라" 항의해도 효과없어
    인터넷서 공유… 초상권 침해도
    동남아 관광객까지 몰려 큰 불편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에 사는 김모(78)씨는 올여름 이후 아무리 더워도 출입문과 창문을 열지 않는다. 지난 8월 중순 한 남성이 옆집 주인이 잠시 외출한 사이 방문을 활짝 열고 사진 찍는 것을 목격했다. 주말에는 김씨의 집에도 열린 창문 틈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이가 많았다. 소리를 질러 항의해도 그때뿐이었다. 한 평 남짓한 방에는 사람들의 카메라를 피할 공간이 없다. 김씨는 "이곳을 누군가의 집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나. 동네를 유원지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쪽방촌 출사(出寫·사진을 찍기 위해 야외로 가는 것)가 유행이다. '서울의 1960~1970년대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며 쪽방촌 사진을 찍어 개인 소셜 미디어 등에 올린다. 그 사진들 밑에 '삶의 애환' 같은 감성적 설명이 달린다. 그 사진들로 인해 주민들이 받는 고통은 외면받고 있다.

    ◇ "내 가난함이 구경거리인가요?"

    지난 14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 쪽방촌의 컨테이너 배급소 앞. 주민 10여명이 줄을 서 있었다. 50m쯤 떨어진 곳에서 한 남성이 망원렌즈를 단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고 있었다. 이 남성은 "쪽방촌은 사람의 진솔한 모습을 가식 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좋은 피사체"라고 했다.

    지난 18일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에 있는 쪽방촌에서 한 남성이 담장에 그려진 벽화를 찍고 있다. 최근 벽화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동네 풍경뿐 아니라 이곳 주민들의 사생활까지 허락없이 카메라에 담는 경우가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이태경 기자
    한 네티즌은 자신의 블로그에 '내가 가진 사소한 것들에도 감사하게 된다'는 글과 함께 영등포 쪽방촌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중에는 쪽방촌 겉모습뿐 아니라 무료 배급을 받고 있는 주민들의 얼굴이 담겨 있다.

    쪽방촌 주민들은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냐"며 반발한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에 사는 박모(73)씨는 "탑골공원에 줄 서서 밥을 받는 것이 창피해 밥을 지어 먹는 사람"이라며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사는지 보겠다고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겠냐"고 했다. 특히 여름철에는 주민들이 방문을 열어놓거나 속옷 차림으로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모습도 사람들이 찍어댔다.

    서울 동자동의 한 쪽방촌 주민이 윗옷을 벗은 채 집에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서울시 자활지원과 관계자는 "2011년에 한 사진작가가 쪽방촌에 실제로 거주하며 주민 동의를 얻어 사진을 찍어 전시했는데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는 평을 받았다"며 "이런 사진과 남의 삶을 구경하듯 찍는 사진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했다. 서울의 대표적 쪽방촌은 종로구 돈의동과 창신동, 중구 남대문로 5가, 용산구 동자동, 영등포구 영등포동 등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쪽방촌에 상시 거주하는 주민이 3240명이다.

    사진 찍기 좋은 마을은 더 심해

    쪽방촌을 관광하듯 돌아다니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많다. 특히 도시재생 사업으로 벽화를 그렸거나 소품 가게들이 들어선 쪽방촌에 이런 사람들이 몰린다.

    서울 종로구 동대문호텔 뒤편에 있는 창신동 쪽방촌 일대는 2012년 홍익대 학생들이 서울시에 제안해 학생들의 재능 기부로 벽화 39점을 그려넣었다. '동대문 쪽방촌 벽화 골목'이라고 이름나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벽화뿐 아니라 주민들이 빨래 후 걸어놓은 속옷, 집 밖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까지 찍는다. 한 주민은 "방이 작다 보니 빨래를 집 밖에 걸어놓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것들도 다 찍어간다. 너무 창피하다"고 했다. 2014년 인근에 숙박업소가 들어서면서부터는 동남아 관광객들까지 찾아온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 일대는 개발 제한에 묶여 낡은 한옥 건물이 남아 있다. 원래 주로 노년층이 20만~30만원 월세를 내고 한옥 모양의 집에서 쪽방살이를 하던 동네였다. 쪽방들이 하나둘 카페로 탈바꿈한 뒤에는 한옥과 세련된 가게들이 어우러져 이색적 분위기를 가진 동네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마을에는 아직 일부 한옥 형태의 쪽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이들은 주민이 아니라 한옥 마을의 소품 정도로 여겨지는 실정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변에서 가난한 사람을 잘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호기심에서 쪽방촌을 찾는다"며 "주민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가난을 상품처럼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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