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모델' 업그레이드로 경제 活路 찾아야"

    입력 : 2017.09.21 03:04

    12년간 박정희 시대 조명한 명지대 포럼 100회 맞아
    이영훈 前 서울대 교수 발표

    "1960~80년대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박정희 모델'은 단순한 정부 주도형이 아니라 국제 환경과 한국의 전통에 조응한 정부·기업·민간의 상호 유인적 협력 체제였다. 1990년대 이후 감속 저성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은 '박정희 모델' 업그레이드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

    한국 경제사 연구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20일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 정기 학술 포럼 100회 기념 학술 대회의 주제 발표를 통해 역사적 관점에서 '박정희 모델' 재평가를 시도했다. 이 교수는 "오늘날 한국 경제를 괴롭히는 병폐는 김영삼 정부가 박정희 모델을 전면 부정한 결과로 외환 위기가 발생한 이후 20년 동안 지속되는 저성장이 초래한 것"이라며 "박정희 모델의 기본 원리는 지금도 유효하고 내외 환경 변화에 따라 개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6년 5월 31일 포항제철 제2 용광로 화입식서 박정희(앞쪽) 대통령과 박태준(뒤쪽 오른쪽) 사장이 불을 댕기고 있다. 빈손으로 출발한 포항제철은 ‘박정희 모델’을 상징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1976년 5월 31일 포항제철 제2 용광로 화입식서 박정희(앞쪽) 대통령과 박태준(뒤쪽 오른쪽) 사장이 불을 댕기고 있다. 빈손으로 출발한 포항제철은 ‘박정희 모델’을 상징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박정희 모델'은 '대외 지향 정책을 통한 자립적 국가 경제 건설' '대기업 우선의 적하(滴下)식 공업화' '정부·기업·종업원의 협력과 조정'을 특징으로 한다. 박정희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에 적극 동참하고 한국의 비교 우위를 실현해 국가 경제를 건설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주요 수출품은 섬유 등 노동 집약적 공산품을 시작으로 정유·비료·시멘트 등 기초 공업, 철강·조선·전자·화학 등 중공업으로 옮아갔다. 1970년대 '외채 망국론'을 내걸고 상대적 자급자족 체제를 지향한 야당의 도전에 직면했지만 박 대통령이 사망한 후인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중화학공업이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영훈 교수는 기업 전통이 없었던 한국에서 정부가 대기업의 발전을 먼저 추구하고 그 효과를 받은 중소기업이 출현한 것은 역사적 조건에 맞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에 한국 경제가 산업 간, 기업 간 연관이 촘촘하게 발달한 점이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또 이 교수는 권위주의 통치에 의존한 것으로 알려진 '박정희 모델'은 국가적·개인적 관점에서 국민 다수의 자발적 협력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여러 경제 주체를 하나로 묶은 '조국 근대화' 이념, 이를 구현하여 당대의 지식인들이 작성한 국민교육헌장, 새마을운동 등이 국민의 통합과 단결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영훈 교수는 '박정희 모델'이 해체된 후 한국 경제는 대외 의존성 증대, 기업·산업 간 연관성 약화, 대기업 쇠퇴 등 질적 구조가 악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박정희 모델' 개량을 주장하며 '전면적 국제화' '기업 규제 혁파와 자유 시장 창출' '자유 이념과 정의의 법에 입각한 새 정치 이념'을 그 핵심으로 제시했다.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소장 정성화)는 2004년 4월부터 정기 학술 포럼을 열어 왔다. 2005년 3월 7회 학술 포럼에서 '박정희 시대의 쟁점과 과제'를 다룬 이후 박정희 시대를 조명하는 데 전념, 정치·경제, 대외 관계,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연구자와 중요 정책·사건 담당자들이 발표·토론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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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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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어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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