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개불알풀·며느리밑씻개, 이름 그대로 둬야 할까

    입력 : 2017.09.21 03:12

    듣기도 부르기도 민망한 이름… 말 못 하는 식물도 불편할 듯
    대안으로 복수초는 '얼음새꽃', 개불알풀은 '봄까치꽃' 제안
    조상들 해학 담겨 있다지만 지나친 이름은 고쳐 나가야

    김민철 사회정책부장
    김민철 사회정책부장

    얼마 전 여자 후배가 사진을 하나 내밀며 꽃 이름 좀 알려달라고 했다. 이른 봄 길가나 공터 습한 곳에 흔한 큰개불알풀이었다. 무심코 이름을 얘기했더니 후배 얼굴색이 달라졌다. 혹시 자기를 놀리는 것 아닌가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필자도 허둥대며 큰개불알풀을 검색해 진짜라고 거듭 말해야 했다.

    식물 이름은 우리 고유어의 보고(寶庫)라 할 정도로 예쁜 이름이 많지만 듣기도 부르기도 민망한 이름도 적지 않다. 요즘 밭가나 산기슭에 많은 며느리밑씻개도 그중 하나다. 별사탕같이 생긴 옅은 분홍색 꽃이 예쁘지만, 줄기에는 사나운 가시가 수없이 돋아난 식물이다. 이 식물에는 시어머니의 며느리 구박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 며느리를 못마땅하게 여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볼일 본 후 쓰라고 며느리밑씻개를 던져 주었다는 것이다. 며느리밑씻개 가시는 정말 험악하게 생겼다. 며느리가 얼마나 미웠으면 이런 식물을 밑씻개로 쓰라고 던져 주었을까. 이야기도 그렇지만 이름도 듣기 거북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특정 사람들을 비하하는 이름도 있다. 중대가리풀은 아파트 보도블록 사이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잡초 중 하나다. 줄기가 땅을 기면서 뿌리를 내리는데 잎이 주걱에 톱니를 단 모양으로 특이하게 생겼다. 독특한 이름은 열매가 스님 머리를 닮았다고 붙은 것이다. 심지어 소경불알이라는 식물도 있다. 더덕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더덕만큼 흔하지 않아 야생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꽃이다. 그런데 뒤 단어는 민망하고 앞 단어는 시각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한번은 야생화 모임에서 이 꽃이 화제에 올랐는데, 여성 회원이든 남성 회원이든 이름을 말해야 할 때마다 난감한 표정이었다. 소경불알은 더덕과 아주 비슷하지만 뿌리가 둥글둥글한 점이 다르다. 조상의 해학이 담겨 있다고는 하지만 상스러운 정도가 좀 심하다. 말도 못하는 식물들은 이런 이름에 얼마나 속이 상할까.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그럼 이 같은 식물 이름을 뭐라 고쳐 부르면 좋을까. 꽃 이름 알려주는 앱 '모야모'에서는 지난여름 부적절한 이름을 가진 식물이 뭐가 있고 대안은 무엇인지 토론이 벌어졌다.

    개불알풀은 이미 널리 쓰이는 대안이 있다. 아주 이른 봄에 피는 것이 봄 소식을 전해주는 까치와 같다고 '봄까치꽃'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이해인 수녀가 이 제목으로 시를 쓰기도 했다. 원래는 개불알풀 외에 개불알꽃도 있었다. 그런데 식물 이름을 정하는 국가표준식물목록위원회에서 2007년 개불알꽃 추천명을 복주머니란으로 정하면서 개불알풀 이름은 손대지 않았다. 그때 함께 바꾸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이름이 좀 '거시기'하지만 열매를 보면 딱 '그것'처럼 생겨 고개가 끄덕여진다며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큰개불알풀, 며느리밑씻개
    큰개불알풀,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밑씻개는 여뀌 속(屬)이고 가시가 달린 덩굴이니 가시덩굴여뀌로 하자는 의견이 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이명(異名·일부에서 쓰는 이름)으로 올라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사광이아재비로 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너무 낯설다는 의견도 많다. 중대가리풀은 꽃 모양이 작은 구슬처럼 생겼으니 애기구슬꽃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지만, 이명인 토방풀도 괜찮은 것 같다. 소경불알은 너도더덕꽃, 이명 중 하나인 알더덕 등이 특징을 잘 잡은 이름 같다.

    이 밖에도 복수초에서 복수(福壽)는 원래 의미보다 앙갚음한다는 '복수'의 뜻으로 더 많이 쓰이니 '얼음새꽃'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많다. 꽃이 눈을 뚫고 피는 특징을 살린 이름이다. 꽃이 제기처럼 생긴 채진목은 제기나무, 꽃이 나비처럼 생긴 바늘꽃인 가우라는 나비바늘꽃으로 고쳐 부르자는 의견도 신선하다.

    물론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식물 이름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고 조상의 생각과 정서가 담겨 있는데, 이름이 밉다고 예쁜 이름으로 고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쓰는 식물 이름 대부분은 1930년대 우리 학자들이 전국 팔도를 다니며 식물명을 채집해 가장 적합한 이름을 고른 것이다. 학자들도 대개 "식물 이름을 자꾸 바꾸는 것은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이런 반론이 옳다고 하더라도 개불알풀같이 지나치게 혐오스러운 식물 이름은 고쳐 쓰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큰개불알풀
    며느리밑씻개
    중대가리풀
    소경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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