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21세기 미술은 현대사회를 치유하는 도구로서의 역할 해야"

    입력 : 2017.09.20 03:07

    [아트클래스] 이진우가 묻고 박서보가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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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보문화재단에서 이진우 작가가 박서보 선생과 만나 현대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백이현 C영상미디어 기자

    “힘들었던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림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어요.” 지난 8월 18일부터 9월 3일까지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린 이진우 개인전 ‘침묵으로의 초대’를 찾은 한 관객의 말이다. 이진우의 작업은 자극적이거나 현란하지 않다. 다만 고요함 속에 오묘한 울림으로 감정을 일렁이게 하며 전시장을 찾은 관객 사이에 ‘마음이 편해지는 그림’이란 평이 자자했다. 이번 전시는 17일간 1천여 명의 관객이 찾았다. 그 중 유독 집중을 받은 관객은 다름 아닌 한국현대미술의 살아있는 전설, 박서보 작가였다. 그는 단색화의 대표 작가이자 독보적인 행보로 한국미술을 세계미술계에 알리는 대선배작가다. 그런 그가 학연 지연도 없는 작가 이진우를 열렬히 응원하게 된 것은 단연 ‘그림’ 때문이다. 전시가 끝난 어느 한적한 오후, 이진우가 박서보의 작업실을 찾았다. 박서보가 바라본 이진우의 작업부터 두 작가가 생각하는 작가의 삶과 작업에 대한 태도를 묻고 답하며 예술가로서 서로의 삶을 존경하고 지지하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박서보(이하 박) 2015년 1월 개인전 차, 프랑스에 들렸을 때 파리의 유서 깊은 한 호텔에 묵었어요. 거기 걸려있던 한 작가의 그림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어요. 아무리 봐도 한국인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정서더라고요. 해당 작가를 만나고 싶어 수소문했어요. 그렇게 이진우 작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림이 시선을 끌지 않았다면 지금도 모르는 작가였겠죠.

    서보문화재단에서 이진우 작가가 박서보 선생과 만나 현대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진우(이하 이): 생면부지의 작가임에도 작품을 보고 직접 저를 찾으셨던 겁니다. 처음 연락을 받고, 선생님의 열정과 격려에 너무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전시마다 찾아주셨고요. 항상 후학을 알뜰하게 챙기시는 분이시죠.

    박: 사람을 극진히 좋아해서 그래요. 좋은 작가거나 예술 언저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결코 스쳐가지 않아요. 이 작가의 작업은 강한 물성이 있어요. 조작된 물성이 아닌 행위과정에서 한지나 숯의 물성을 최대한 끌어 올려요. 나와는 다른 이 작가만의 좋은 점이예요. 저는 종이 자체를 가지고 행위과정에서 종이가 자신의 본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합니다. 이 양반은 종이에 숯이라는 또 하나의 매체를 대입해요. 종이가 숯을 뒤집어쓰면서 마치 청전 이상범의 그림처럼 안개가 자욱이 낀 속에 산봉우리가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 작가는 오랜 세월 프랑스에 살면서도 그 정서에 휘말리지 않았죠. 자기가 경험했던 삶의 정서를 잊지 않는 사람은 그 속에서 자기를 잘 운용해 나가요.

    이: 한국인이 된장찌개를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죠. 인위적으로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노력하거나 애쓰지는 않았어요. 그저 저의 문화적 뿌리를 알지 못하면 결국 서양미술의 흐름에 함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한국의 전통 식문화, 주거문화 등에 관심을 두었고요.

    박: 1975년 동경화랑 대표 야마모토 다카시가 저에게 미국 뉴욕에 가서 1년 반만 열심히 활동하면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를 꺼라 하더라고요. 그러나 저는 가지 않았어요. 미국은 미국 자체의 현실이 있죠. 저는 비록 못살고 충돌하고 엉망진창이 된 우리의 현실이더라도 그 공기를 호흡하며 예술을 탄생시키고 싶었습니다. 몇 년 전, 알렉산드로 몬로(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아시아미술부문 수석큐레이터)와 이야기 도중 '잡스러운 곳에서 뿌리를 박고 싶었다'는 말을 했더니 미국에 와서 '미국화'되어 꺼져버린 작가가 많다며 과거 저의 선택이 옳았음을 강조하더군요.

    이: 저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다가 잠시 한국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하루 18시간씩 노동했어요. 절실하게 그림을 그리고 새벽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의 교수가 말하더군요. '너희 땅에 있으니 마음은 편하지 않느냐고. 예술가는 편하고 좋으면 안 된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내와 짐을 싸서 프랑스로 다시 떠났습니다. 처절하고 철저하게 저를 버리는 과정에서 고통 중에 나온 진정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요.

    박: 그림은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수신을 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조선시대 선비 방에는 지필묵이 있었어요. 붕당정치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쟁을 벌이며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을 쳐내야 할 때도 있었을 거예요. 괴로운 마음과 더럽힌 몸을 수신의 의미로 먹을 갈고 사군자를 친 거죠. 그 수행 과정의 찌꺼기가 그림입니다. 스님이 하루 종일 목탁을 두드리며 독경을 하잖아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거거든요. 미술도 똑같습니다. 저는 아날로그 세대로서 21세기를 맞이할 때쯤 디지털 시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삶은 점차 치열하고 각박해지며 사회 도처가 스트레스로 가득 찼어요. 최근에 일어나는 흉악 범죄도 결국 스트레스에 기인한 것이거든요. 스트레스 병동이 된 현대사회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저는 그것이 21세기 예술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제 그림에서 20세기까지 컬러를 사용하지 않다가 2000년이 지나며 색채를 도입한 것 역시 치유의 도구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편안하고 독특한 색을 내기 위해 색을 배합해 가고 있죠.

    이: 저 역시 작업을 하며 수행하고 수신하며 스스로를 버리며 또 한편으로 치유합니다. 저는 이 시대의 작가는 오피니언 리더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예술은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예술가에게는 그만큼 책임감이 따라요. 저는 머리로 이해하는 작업이 아닌 누구나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진정한 미술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저의 그림을 본 사람의 마음이 평안해지고 새로운 자극을 얻길 누구보다 바라죠.

    박: 현대미술은 전부 머리로 일하는 작업이에요. 물론 개념적 요소는 생각을 구조화하는데 꼭 필요합니다. 다만 콘셉트에 매몰되지 않게 경계해야 해요. 작가끼리 개념을 공유하며 개념의 근친상간이 일어나면 공멸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작가는 자기 신체로서 일을 추진해요. 이 작가 손을 봐요. 사람의 손인지 곰의 발바닥인지… 그 노고가 작업에 고스란히 베어 나오죠.

    이: 다소 과격한 발언이지만 르네상스 이후 서양미술은 신과 인간을 분리시켜 '시각'에 집중하며 예술이 가진 어떤 수행과 소명이 소멸되어 간 것 같아요. 저는 그러한 서양미술사의 범주에서만 해석하는 작품에서 최대한 멀어지려고 했어요. '시각'에 의존하는 그림이 아닌 '나'를 지우고 수행의 도구로서만 역할을 하는 작가와 그 결과물을 내고 싶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치유의 미술, 수행으로서의 예술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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