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은 카페, 한쪽은 갤러리… 여기는 은행입니다

    입력 : 2017.09.18 03:16

    [독일 도이체방크의 진화… 김강한 특파원 르포]

    IT 발달로 지점 찾는 고객 줄자 작년 11월 베를린 지점 싹 바꿔
    창구 대신 전용 상담실 만들고 ATM은 건물 밖으로 내보내, 스타트업 부스·회의실도 설치
    고객들 "은행 볼일 없어도 들러"… 다른 곳보다 방문객 2배 많아

    김강한 특파원
    김강한 특파원
    지난 8일(현지 시각) 현금을 찾기 위해 독일 베를린 도심 프리드리히 슈트라세에 있는 도이체방크 지점을 찾았다. 출입문을 열고서 주춤했다. 한국처럼 상담 창구가 보이지 않았고, 대기 번호표를 뽑는 곳도 없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 'Deutsche Bank(도이체방크)'라고 적힌 간판을 다시 확인하고 들어오니 검은 정장을 한 직원이 웃으며 다가왔다. 그에게 "여기가 은행 맞나요?"라고 물었더니 "물론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답했다.

    이 은행 지점은 고급 카페 같은 분위기였다. 1300㎡(393평) 넓이의 지점을 들어서면 실내 오른쪽에는 케이크와 음료 등을 파는 카페가, 왼쪽에는 예술품 전시 공간이 있다. 비디오 아트 작품을 전시 중이었다. 출입문 맞은편에는 호텔 프런트처럼 꾸민 은행 안내 데스크가 있다. 데스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회의용 테이블과 티테이블, 소파 등이 놓여 있다. 은행 직원 30명은 투명 유리 벽 안쪽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고객이 오면 문 앞에서 고객을 맞이해 전용 상담실로 안내한다.

    은행 직원 마를린 팔켄버그는 "금융 IT(정보기술) 발달로 지점을 찾는 고객이 감소하고 있다"며 "도이체방크는 지점의 활로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이곳을 카페처럼 꾸며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이 지점에선 현금인출기도 찾기가 어려웠다. 한 직원에게 현금인출기 위치를 묻자 건물 왼편 출입구 밖으로 나간 뒤 구석으로 안내했다. 그는 "현금이라는 전통적인 결제 수단은 점점 자취를 감출 것"이라며 "'미래 지점'에 어울리지 않아 일부러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옮겼다"고 했다. 이 지점 안 카페에선 카드 결제만 가능하다. 현금 결제를 여전히 선호하는 독일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직장인 소냐 하세씨는 "은행에 볼일이 없어도 일주일에 1~2번은 카페에 점심을 먹으러 온다"며 "딱딱한 은행 분위기가 아니어서 편하다"고 했다.

    지난 8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에 있는 도이체방크 ‘미래 지점’의 모습. 고객들이 은행 창구 대신 카페 분위기의 테이블에 앉아 상담받고 있다. 이 지점은 일반 은행지점과 달리 전시 공간과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을 위한 공간 등도 갖추고 있다.
    지난 8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에 있는 도이체방크 ‘미래 지점’의 모습. 고객들이 은행 창구 대신 카페 분위기의 테이블에 앉아 상담받고 있다. 이 지점은 일반 은행지점과 달리 전시 공간과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을 위한 공간 등도 갖추고 있다. /베를린=김강한 특파원

    도이체방크가 이 지점에서 '생존법 찾기 실험'을 시작한 것은 2005년 9월이다. 처음에는 카페가 아니라 공항 비즈니스 라운지처럼 꾸몄고 직원들은 상담 창구 대신 라운지에서 고객들과 만나는 방식을 택했다. 지점에서 명품 가방과 생필품 등도 팔았다. 그 결과 이 지점은 다른 지점들보다 1.5배 이상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도이체방크는 지난 10년간의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보고 작년에 500만유로(약 68억원)를 들여 '기존 틀'을 완전히 깬 새로운 지점으로 리모델링했다. 카페와 전시 공간을 넣었고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을 위한 창업 공간도 마련했다. 이름도 'Zukunft(미래) 지점'이라고 붙였다.

    직원 팔켄버그는 "미래에 은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미래 지점이라는 명칭을 썼다"며 "하루 평균 다른 지점보다 2배 이상 많은 500여 명이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이체방크는 이곳의 실험 결과를 토대로 다른 지점도 차례로 리모델링한다는 계획을 잡고 있다.

    스타트업을 위한 창업 공간과 기업들이 유료로 사용하는 회의 공간도 있다. 창업 공간은 약 30평 규모인데, 책상과 와이파이(무선랜) 등이 설치돼 있다. 창업 분야는 제한이 없고, 이용료도 무료이다. 스타트업이 은행 관련 앱(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이 지점에 있는 모바일 뱅킹 전문가가 기술 상담도 해준다. 미래의 고객이 될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을 미리 유치한다는 차원이다.

    현재 베를린에는 스타트업 1000여 곳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회의 공간은 인근 기업에 임대해 대여 수입을 올린다. 지점 차원의 행사도 자주 개최한다. 매달 열리는 금융·창업 관련 워크숍은 늘 만석이라고 한다. 크리스마스 때는 고객 초대 파티를 여는데, 작년에는 2000여 명의 고객이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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