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범죄가 갈수록 은밀해지고 있다. 일반 인터넷으로는 접속할 수 없는 별도의 인터넷 망(網)에서 '인터넷 암시장'을 만들어 마약·위조 여권·신용카드 정보 등을 사고판다.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를 거래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증거를 찾기도 쉽지 않다.
◇일반인은 모르는 인터넷 암시장
대표적인 인터넷 암시장이 딥웹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익스플로러(Explorer)나 크롬(Chrome) 같은 인터넷 창으로는 접속할 수 없는 인터넷 망을 일컫는 말이다. 토르(Tor) 같은 전용 웹 브라우저로 접속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미 해군이 정보 통신 보안을 목적으로 개발한 뒤 민간에 넘어온 소프트웨어다.
지난 13일 한 보안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의 도움을 받아 딥웹에 접속했다. 그중 '신용카드 판매 사이트'를 눌렀다. 해외 카드뿐 아니라 국내 대표 카드사들의 회원 정보가 팔리고 있었다. 단순히 가입자 이름이나 주소 같은 것이 아니었다. 카드별 인출액 한도 등 구체적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인출액 제한이 높거나 법인카드의 경우 더 높은 가격이었다. 보안 업체 스틸리언 관계자는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서 카드를 긁다가 복제기로 카드 정보를 도난당한 것"이라며 "이 카드 정보로 결제 승인이 되는 해외 온라인 쇼핑 사이트까지 알려주는 불법 판매자도 있다"고 했다.
마약 판매 사이트에선 각종 마약이 제품 사진과 함께 중량 순으로 분류돼 있었다. 위조 여권 판매 사이트에선 상품 예시라며 남아프리카공화국 국적의 40대 남성의 여권 등 위조되거나 복제된 것으로 보이는 여권 사진 30여 개가 올라와 있었다.
'딥웹'은 전 세계를 거치며 인터넷 접속 위치(IP)를 세탁하고, 사용자 신원정보도 암호화된다. 워낙 은밀하다 보니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딥웹을 통한 범죄가 급증하자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2월부터 딥웹을 전담으로 수사하는 요원을 배치했다. 지난 11일 대마초를 재배해서 딥웹을 통해 판매한 일당 4명을 검거·구속했다. 추적 10개월 만에 첫 성과를 낸 것이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관계자는 "일반 해외 사이트라면 IP 추적도 가능하고 해외 공조수사도 할 수 있지만, 딥웹은 보안·암호화 기능이 뛰어나 서버가 어디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했다.
◇가상화폐 등 이용해 더욱 은밀하게
딥웹뿐 아니라 범죄가 이뤄지는 '인터넷 암시장'은 갈수록 은밀해지고 있다. 인터넷 범죄자들은 페이스북·카카오톡 같은 일반 소셜미디어가 아니라 자동 삭제 기능을 갖춘 것을 쓴다고 한다. 대화 내용을 캡처하면, '캡처했다'는 사실이 상대방에게 자동적으로 알려진다. 또 해외 서버를 이용하기 때문에 추적이 힘들다. 거래 수단으로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를 이용하기도 한다. 가상화폐는 관리 주체가 없어 거래 흔적이 남지 않는다. 수사 당국 관계자는 "최근엔 내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공모하면서 인터넷 범죄가 국제화되고 있다"며 "갈수록 증거 수집이 어렵다"고 했다. 국제사회는 국가 간 공조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 7월 미국·영국·태국 등은 공조를 통해 딥웹 내 마약 거래 사이트인 '알파베이'를 폐쇄했다.
우리 정부도 '인터넷 암시장' 범죄 추적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처음 딥웹의 범죄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시스템 개발을 시작했다. 2년간 12억5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이희조(46) 고려대 정보대학 컴퓨터학과 교수는 "딥웹 같은 인터넷 암시장은 해킹 수법 등 큰돈이 되는 정보들을 은밀하게 거래할 수 있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이런 것이 국내 사이버 범죄에서도 본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딥웹(Deep Web)
일반적으로 익스플로러나 크롬 등으로 접속 가능한 인터넷망과 다른 별도의 인터넷망을 이용하는 웹이다. 토르 등 전용 인터넷 창을 통해 망에 접속해야 한다. 딥웹에서는 인터넷 접속 위치(IP)를 추적하기 어려워 범죄자들이 불법 행위에 딥웹을 이용하고 있다.